서울 중구 삼일로 고갯길에는 1975년 개관한 오래된 소극장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삼일로창고극장’입니다.
이달 11일부터 이곳에서 ‘제1회 모노드라마(일인극)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습니다. 주최 측이 1970년대 소극장 신화를 만든 배우 고 추송웅 씨(1941∼1985·사진)의 실험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됐습니다.
추 씨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연극 배우입니다. 서라벌예술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63년 ‘달걀’이란 작품으로 데뷔했습니다. 그는 배우로 일반적이지 않은 특이한 외모에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추송웅 스타일’의 연기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성격파 배우로서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만들어 낸 겁니다. 그의 독특한 희극 연기는 1977년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각색한 ‘빨간 피터의 고백’은 아프리카 밀림에서 잡혀 와 서커스 스타가 된 원숭이 이야기입니다. 빨간 피터가 스스로 인간이 돼 가는 과정을 학술원에 보고하는 내용인데, 추 씨는 ‘빨간 피터’를 연기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동물원 원숭이 우리 앞에 있었다고 합니다. 흉내까지 내다 경찰에 신고를 당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결국 무대에서 진짜 한 마리 원숭이처럼 보였다는 극찬을 받았고, 연극은 공연 4개월 만에 관객 6만여 명을 동원할 정도로 화제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그가 출연한 모노드라마 ‘우리들의 광대’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한국 모노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44세의 아까운 나이에 패혈증과 급성 신부전증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고 연기했던 ‘빨간 피터의 고백’은 후배 배우들에 의해 여러 번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진정한 우리 시대의 광대’라는 추모를 받았던 그의 연기가 한국 연극계에 한 획을 그은 것입니다.
얼마 전 개관 33주년을 자랑하던 대학로 소극장 ‘학전’이 김민기 대표의 건강 악화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추송웅의 실험정신이 녹아 있는 ‘삼일로 창고극장’만큼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작고 단단한 공연이 꾸준히 이어지는 소극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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