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 차 왜저래?”…앞차 구하려고 ‘고의사고’ 낸 가장 [따만사]

  • 동아닷컴
  • 입력 2024년 5월 9일 12시 00분


고속도로 한 복판 의식 잃은 운전자 구한 의인 김종호 씨

김종호 씨가 지난해 6월 12일 시흥→김포 방면 수도권제1외곽순환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의식잃은 운전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다.
김종호 씨가 지난해 6월 12일 시흥→김포 방면 수도권제1외곽순환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의식잃은 운전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16일 김종호 씨가 119 의인상으로 받은 상금을 경기 시흥시 목감동 행정복지센터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 2월 16일 김종호 씨가 119 의인상으로 받은 상금을 경기 시흥시 목감동 행정복지센터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 2월 16일 경기 시흥시 목감동 행정복지센터에 40대 가장이 찾아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100만 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을 건넸다.

이 상품권은 그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위기에 빠진 시민을 구해 119로부터 받은 상금이었다. 목감동에 사는 ‘의인’ 김종호 씨(43) 이야기다.

김종호 씨가 인터뷰에 응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종호 씨가 인터뷰에 응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제조업체 대표인 김 씨는 지난해 6월 12일 오후 4시경 시흥에서 김포 방면으로 향하는 수도권제1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김 씨는 편도 4개 차로 중 2차로에서 운전하고 있었다. 차가 막히는 시간대가 아니었지만 유독 2차로에서 전방 차량의 속도가 갑자기 줄기 시작했다. 감속을 일으킨 원인은 차량 몇 대 건너 앞쪽에서 달리던 ‘전기차 SUV’였다.

다른 차량은 속도가 줄어든 SUV를 차를 앞질러 갔지만, 김 씨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감은 맞았다. SUV는 급기야 1차선으로 방향을 틀더니 중앙분리대를 긁으며 운행을 이어갔다. 김 씨는 해당 차량 오른쪽으로 지나며 창문을 열어 내부를 살폈다.

30대로 보이는 SUV 운전자(남)는 의식을 잃은 채 사지가 경직돼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김 씨는 “일단 차부터 세워야겠다는 것 외에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한시가 급했다.

김 씨는 SUV를 앞질러 본인의 차 범퍼를 들이댔고, 안전하게 SUV를 멈추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김 씨의 차는 후미가 파손되는 손상을 입었다.

“내차는 걱정 말라”며 홀연히 현장 떠나
김 씨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달려갔다. 다행히 SUV 조수석 쪽 창문이 반쯤 열려있던 덕에 잠긴 문을 열 수 있었다. SUV 운전자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고속도로 1차로 한 복판인 데다가 커브 구간이라 자칫 대형 화물차라도 덮친다면 김 씨의 목숨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김 씨는 운전석 의자를 눕히고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했다. 처음 마주하는 위급상황이었지만, 수상구조사인 친형의 평소 조언을 떠올렸다. CPR을 하고 경직된 몸을 주무르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김종호 씨가 지난해 6월 12일 경기 시흥→김포 방면 수도권제1외곽순환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의식잃은 운전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다.
김종호 씨가 지난해 6월 12일 경기 시흥→김포 방면 수도권제1외곽순환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의식잃은 운전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다.

그사이 뒤따르던 다른 여성 운전자도 차에서 내려 119에 신고하며 도움의 손길을 보탰다. 김 씨는 응급처치하는 동안 119 대원과 통화를 켜두고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주고받았다.

얼마 후 SUV 운전자의 의식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린 운전자는 “누구시냐?”고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운전해 가려고 했다.

김 씨는 “선생님께서 운전 중에 정신을 잃어서 제가 강제로 세웠다. 119가 오고 있으니 운전하지 마시고 잠시 안정을 취하고 계시라”며 달랬다. 그러면서 119가 도착하기까지 약 30분간을 붙잡고 기다려줬다.

이윽고 도착한 119 대원은 사고를 수습하며 김 씨 차량이 파손된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물었다. 김 씨는 “내가 고의로 일으킨 사고이니 내가 알아서 고치겠다”며 홀연히 현장을 떠났다.

SUV 운전자는 이전에 뇌출혈 수술을 받았는데, 운전 중에 발작 증세가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 “일해서 번 돈 아니니 기부하자”
얼마 후 김 씨는 119로부터 “의인상 대상자로 추천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 씨는 “별로 한 것도 없다”며 민망해했지만, “아이들에게 좋다”는 말에 수락했다.

김 씨는 딸 셋(5, 9, 13세)을 둔 ‘딸부자 아빠’다. 아이들은 처음엔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다가 동영상을 보고 “아빠가 대단하다”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소방청은 차량이 빨리 오가는 위험한 고속도로에서 추가 교통사고를 방지하고 생명을 구해낸 공로로 김 씨에게 ‘119 의인상’을 수여했다.

김 씨가 소방청 상금(온누리상품권 100만 원)을 수령한 시기는 지난 2월이다. 마침 그 무렵은 김 씨 부인의 생일이었다.

지난해 11월 29일 정부세종청사 소방청에서 김종호 씨가 가족들과 함께 119 의인상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정부세종청사 소방청에서 김종호 씨가 가족들과 함께 119 의인상을 받고 있다.

김 씨는 아내 생일날 아이들과 둘러앉아 “오늘은 엄마 생일이니 우리 받은 상품권으로 맛있는 고기 먹고 예쁜 옷 사 입을 수 있다. 그런데 아빠는 엄마 생일 기념으로 다 같이 기부하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선뜻 동의했다.

김 씨는 “사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일감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아내는 ‘우리가 일해서 번 돈이 아니니 우리보다 더 힘든 한부모 가정 등에게 주는 게 맞다’며 뜻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예전에 비슷한 일로 대형 교통사고를 막은 ‘투스카니 의인’을 보고 굉장히 감명받았다. 그 선한 영향력이 나에게까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이 진짜로 내게 닥칠 줄은 몰랐다”며 “미천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 사건이 또 누군가에게 귀감이 돼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좀 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종호 씨가 인터뷰에 응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종호 씨가 인터뷰에 응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고속도로#운전자 구조#의인#김종호#고의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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