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닥친 기후재앙… 시시비비(是是非非) 가릴 때 아니다[기고/최재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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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PP 기후환경 사진 프로젝트-컨페션 투 디 어스
9월 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갤러리 신당에서 전시
최재천 교수 “사진전 관람한 모든 가슴 뜨거워지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중구문화재단 제공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중구문화재단 제공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실제로는 기껏해야 한 자, 즉 30㎝도 안 되는 거리이건만 인식과 행동 간에는 엄청난 간극이 가로막고 있다. 기후변화의 진위를 두고 논쟁을 벌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 지구 행성에 사는 그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매일 매 순간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이상 기후의 느낌을 피부로 느끼며 살기 때문이다.

‘CCPP 기후환경 사진 프로젝트-컨페션 투 디 어스(Confession to the Earth) 포스터. 중구문화재단 제공
‘CCPP 기후환경 사진 프로젝트-컨페션 투 디 어스(Confession to the Earth) 포스터. 중구문화재단 제공
기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인식은 확고해졌다. 이제는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이럴까 저럴까 머리를 굴릴 때가 아니라 가슴이 뜨거워져야 할 때가 되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데 사진만큼 좋은 매체가 또 있을까 싶다. 사진 이미지는 분명 우리 눈을 통해 들어오는데 바로 곁에 있는 두뇌를 움직이기보다는 한참 아래 있는 가슴을 뒤흔든다. ‘CCPP 기후환경 사진 프로젝트-컨페션 투 디 어스(Confession to the Earth)’에서 만나는 사진들은 한결같이 하릴없이 무례하게 우리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는 해마다 300일이 넘도록 비행기를 타고 80개국 이상을 순방하며 희망을 전도한다. 2011년 처음 우리말로 번역되었다가 2023년 새로 번역되어 나온 <희망의 이유>를 시작으로 하여 <희망의 자연>, <희망의 밥상>, <희망의 씨앗>, 그리고 2023년에 나온 <희망의 책>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희망을 전파한다.

몇 년 전 함박눈이 포근하게 내리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생님이 ‘네 개의 촛불’이라는 파워포인트 자료를 첨부한 이메일 연하장을 보내주셨다. 우선 평화(peace)의 촛불이 이제 아무도 자기를 지켜주지 않는다며 힘없이 스러지더니, 믿음(faith)의 촛불도 사람들이 예전만큼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며 쓸쓸히 사라지고 이윽고 사랑(love)의 촛불마저 꺼져버린 어두운 방 안으로 한 아이가 들어온다. 영원히 함께 타기로 약속했던 네 개의 촛불 중 이미 세 개가 꺼져버린 걸 보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마지막 촛불이 이렇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타고 있는 한 우리는 언제든 다른 촛불에 새로이 불을 밝힐 수 있단다. 나는 희망(hope)의 촛불이니까.”

기후변화로는 모자라 기후 위기라는 표현을 쓰면서 우리는 지금 미래 세대에게 희망보다는 절망과 무기력감을 안겨주고 있다. 우리가 저지른 일이니,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2023년 제6차 보고서에서 기후 위기의 재앙을 되돌릴 시간이 3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티격태격 어영부영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착수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영어 이름 머리글자 CCPP와 발음이 비슷한 우리말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내걸었는데, 나는 거기에 물음표를 덧붙이고 싶다. 지금은 시시비비 따위를 가릴 때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 함께 팔을 걷어붙일 때가 되었다. 이 사진전을 관람하고 나가는 모든 이들이 팔소매를 걷어 올리는 걸 보고 싶다.

#서울 톡톡#서울#ccpp 기후환경 사진 프로젝트-컨페션 투 디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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