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다 최근 프리랜서로 전직한 최 모 씨(40·남)는 결혼한 지 4년이 넘었지만 ‘딩크족’(자녀 없이 사는 부부) 생각엔 변함이 없다. 둘이 살기에도 빠듯한 형편에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은 어머니의 월세도 부담하고 있어 자녀는 언감생심이다.
고물가와 경기 둔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은퇴한 부모의 노후 부담이 3040세대까지 내려오면서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한 달에 100만 원이 넘는 부모님의 집 대출이자를 오롯이 부담하고 있는 40대 직장인 이 모 씨도 결혼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자녀는 낳을 생각이 없다.
이 씨는 “동생 형편도 좋지 않은 편이라 장남인 나 혼자 부모님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며 “부모님 노후와 우리 부부 노후만 준비하기에도 벅찬데 아이까지 낳으면 불어날 생활비와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인 김 모 씨는 “늦둥이 외동딸이라 부모님 두 분 다 70대”라며 “형제가 없으니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부모님이 연금과 그동안 모아둔 적금으로 생활하고 계시지만 연세가 있으니 갑자기 목돈이 나갈 수 있는 병원비가 제일 두렵다”며 “부모님을 위해 각종 질병보험에 가입한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했다.
‘블라인드’ 등 인터넷 익명게시판에는 부모 부양 문제를 이유로 결혼을 고민하는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방 부모님이 노후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가장 큰 걱정”이라거나, “부모님 노후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는 내용이다.
결혼은 했어도 부모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자녀를 포기했거나 하나만 낳기로 결정했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한 인터넷 카페 이용자는 게시판에 “양가 부모님이 노후 준비가 부족해서 둘째 가지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며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하려니 고민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통계청의 ‘2023 고령자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중 생활비를 자녀·친척으로부터 지원받는 비중은 17.8%였다. 특히 노인 인구 중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비취업자는 자녀·친척 지원 비중이 24.6%로 훨씬 더 높았다.
이는 대다수 국민이 노후 생활비로 충당하는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퇴직·주택연금 등 각종 연금 수급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0월 공표한 ‘포괄적 연금통계’ 결과 2021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이 포함된 615만 가구 중 587만 가구가 월평균 77만 1000원 연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기준 50만 원 이하 연금 수급자가 64.4%로 과반이고, 100만 원 이하를 포함하면 89.1%였다.
우리나라와 같이 만혼과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에서는 부모 부양과 자녀 부양, 이른바 ‘더블케어’(이중 부양 부담)가 이미 저출산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일본 내각부 조사 결과 2016년 기준 ‘더블케어’ 부담을 지고 있는 사람은 25만 3000명으로 추산되고, 평균 나이는 39.7세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8~9년 전 5060 베이비부머 세대가 ‘더블케어’에 시달리는 사회적 문제가 보고됐다. 이들을 보고 자라온 3040세대는 부양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전에 가족계획을 축소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이든 자기 자신이든 노후 대비 문제가 사적 영역의 부담으로 남아있을수록 가족을 만드는 문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며 “노후 대비든 돌봄 문제든 공적 영역에서 풀어가려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야는 지난 7일 국회에서 연금 개혁안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는 것에는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을 두고 여당은 43%, 야당은 45%를 주장하며 평행선을 이어오다 합의가 불발됐다. 이에 따라 연금 개혁은 22대 국회로 넘어가면서 논의 시점은 뒤로 더 밀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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