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이미 이혼했다면 혼인 경력을 지워주는 혼인무효 처분을 할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가 40년 만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받게 됐다. 지난해 12월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 나오는 첫 대법원 전합 선고인 만큼 사회적 변화를 고려한 판결이 나올지 주목된다.
20일 대법원은 23일 전원합의체를 열어 이혼한 당사자에게 혼인무효 처분을 인정하지 않는 1984년 대법원 판례를 적용한 혼인무효 소송에 대한 상고심 선고를 내린다고 밝혔다. 이 소송은 2001년 12월 결혼해 2004년 10월 조정을 통해 이혼한 부부 중 한쪽이 2019년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며 혼인무효를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혼인무효는 당사자 간 합의 없는 혼인이었을 때 인정된다. 하지만 1, 2심은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혼인무효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1984년 2월 “혼인관계가 이미 이혼신고에 의해 해소됐다면 혼인무효 확인은 과거 법률관계의 확인으로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미 혼인관계가 끝난 사이인데 굳이 혼인무효를 인정받는 게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혼한 부부라도 혼인무효 사유에 해당한다면 결혼과 이혼 기록이 서류에 남는 이혼 대신 가족관계증명서에서 혼인 이력 자체가 지워지는 혼인무효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간 적지 않았다. 특히 외국 여성이 국제결혼을 명목으로 국내에 입국해 혼인신고를 한 뒤 도주하는 경우에 주로 문제가 됐다. 이런 경우 혼인무효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남성이 아무 잘못이 없더라도 혼인관계를 끝내려면 이혼할 수밖에 없는데, 만약 이후 다른 여성과 재혼할 경우 기존 이혼 이력이 남아 있어 부당한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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