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추천위 보고서’ 들여다보니
“후보자 42명 3시간 반만에 검증
수차례 지적에도 시간 부족 여전
공정성 불신, 추천 받아도 고사 많아”
올 1월 퇴임한 민유숙 안철상 전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선정 절차에 후보추천위원으로 참여한 현직 판사가 “회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며 절차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8월 1일 퇴임하는 김선수 노정희 이동원 대법관 등 3명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해 후보 55명의 명단이 10일 공개돼 대법관후보추천위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은 27일까지 후보자 55명에 대한 각계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추천위가 회의를 통해 최종 후보자 9명 이상을 추천하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중 3명을 선정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한다.
● 대법관 후보 1명당 검증 5분 남짓
2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민유숙 안철상 전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선정 과정에서 추천위 위원 10명 중 법관추천위원으로 참여한 안은지 창원지법 판사(42·사법연수원 38기)는 3월 법원 내부망에 올린 ‘추천위 활동 보고서’에서 “회의가 1회에 불과하고 그 시간도 오후 3시부터 시작돼 모든 심사동의자에 대해 충분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기에는 사실상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당시 신숙희 엄상필 대법관 등 최종 후보자 6명은 회의가 시작된 지 3시간 반 만인 오후 6시 반경 명단이 공개됐다. 심사에 동의한 후보자가 42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대법관 후보 1명을 검증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5분에 불과한 셈이다. 안 판사는 “회의 당일 배부되는 자료를 검토하고, 절차나 추천 방식 등에 관해서도 위원끼리 논의해 결정해야 하는 점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오전에는 회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법조계 안팎에선 대법관 후보자 수에 비해 추천위 과정이 너무 간소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어떤 방식으로 추천위가 진행됐는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 등 추천위원들이 중점적으로 추천하는 후보들을 중심으로 추천위 회의가 진행되지 않겠느냐고 추측하는 정도였다”며 “최종적으로 선정되지 않은 나머지 후보들은 어떤 판결을 해왔는지, 실력이 어떤지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고 했다.
안 판사 역시 보고서에서 “회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법관위원 활동 보고를 통해 여러 차례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회의 시간 등 추천위 회의 진행 방식은 추천위원들이 상의해 정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 “깜깜이 추천위 절차도 공개 필요”
보고서에는 모든 내용과 과정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추천위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담겼다. 현행 추천위 규칙은 회의 절차와 내용 등은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 판사는 “공정한 심사와 추천을 위해서는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라며 “심사 및 추천 과정에서 나온 구체적인 회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더라도 최종 후보자를 추천하게 된 절차와 과정은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고법 판사는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선배 법조인 중에선 실력조차 평가받지 못하고 사실상 내정된 후보들의 들러리만 설 바엔 후보 심사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한 사례도 많다”며 “추천위 절차가 공정하게 이뤄진다는 게 확인되면 대법관 후보의 인재풀도 넓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심사에 동의한 후보들에 대한 평가와 의견 등이 충실하게 수집될 수 있도록 주요 판결 등 심사 자료를 추천위가 열리기 전에 미리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보고서에 담겼다. 의견을 서면으로만 제출할 수 있게 한 방식 역시 시대 흐름에 맞춰 온라인 제출 등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김선수 노정희 이동원 대법관 후임을 논의하는 이번 추천위 위원장은 이광형 KAIST 총장이 맡는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영훈 대한변호사협회장, 조홍식 한국법학교수회장, 이상경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은 당연직 위원으로 들어간다. 법원조직법상 추천위에 선임 대법관이 포함돼 이번에 퇴임하는 김선수 대법관도 당연직 위원이다.
대법관 아닌 일반 법관위원으로는 권창환 부산회생법원 부장판사가 선정됐다. 김균미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초빙교수와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당연직 위원으로 추천위에 참여한다.
55명의 대법관 후보 가운데는 지난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돼 낙마했던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62·16기)를 비롯해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제기했던 징계 취소 소송의 대리인을 맡았던 검사 출신 이완규 법제처장(63·23기),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박영재 서울고법 부장판사(55·22기) 등이 심사동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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