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3일 전원합의체를 열고 이미 이혼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혼인을 무효로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미 이혼한 부부의 혼인을 무효로 돌려도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1984년 판례를 40년 만에 바꾼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혼인 무효 사건의 청구인이 전 배우자를 상대로 낸 혼인 무효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각하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의 청구인은 2001년 12월 결혼한 뒤 2004년 10월 이혼했다. 청구인은 2019년 혼인 신고 당시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정신 상태에서 실질적인 합의 없이 혼인 신고를 했다며 혼인 무효를 주장했다. 1, 2심은 합의 여부와 관계 없이 1984년부터 유지된 대법원 판례에 따라 혼인 무효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혼인 관계를 전제로 해 수많은 법률 관계가 형성돼 그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며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 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1984년 나온 기존 대법원 판례는 이미 이혼한 부부의 혼인을 무효로 돌려도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당시 “혼인 관계가 이미 이혼 신고에 의해 해소됐다면 혼인 무효 확인은 과거 법률 관계의 확인으로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시했다.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됐으므로 혼인 무효의 실익이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가족관계증명서에서 혼인 이력 자체가 지워지는 혼인 무효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외국인이 국제 결혼을 명목으로 입국해 혼인 신고한 뒤 도주해 배우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 부모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결혼했던 이들이 재혼 과정에서 이혼 이력 때문에 피해를 받은 사례 등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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