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어머, 애가 넷?! 세상에, 어떻게 키워?”
얼마 전 퇴근길, 버스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여성 두 분의 대화에 귀가 솔깃해졌다. 회사 동료들인 것 같은데, 지인 중 아이 넷인 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첫째가 중학생인데 사춘기고, 막내는 이제 6살이래.” “아니, 나는 하나도 버거운데. 그 엄마는 걔들을 다 어떻게 건사하지?” ‘저도 애가 넷인데 잘 건사하고 있습니다.’ 누군지 모를 아이 넷 동지 이야기에 반가워 입이 근질근질하던 찰나 한 여성이 말했다. “근데 엄마도 힘들겠지만, 애들도 안됐다.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여럿이 얼마나 힘들 거야.” 그러자 다른 여성이 “그러게, 애들도 힘들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번듯하게, 남부럽잖게…“잘 키우지 못할 거면 안 낳는다”
갑자기 퇴근길 경험이 떠오른 건 최근 저출산 관련해 진행한 인터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2040세대를 폭넓게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게 있었다. 아이를 (더) 낳고 싶지 않은 이유를 물었을 때 의외로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젊은 친구들이라 본인의 경력이나 일, 자유시간에 관한 답이 먼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자녀 이야기를 먼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재 지방 소재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A 씨(31)는 “자녀를 가질지 모르겠지만 갖는다면 한 명만 갖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아이를 키운다면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번듯하게 키우고 싶은데 제 벌이로는 한 명이 적당할 것 같다”며 “둘, 셋을 키울 인프라는 꾸릴 자신이 없다”고 했다.
B 씨(38)는 결혼 10년차지만 아이가 없다. 그는 “와이프가 아이를 낳으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했었다”며 “잘 키우지 못할 바에야 안 낳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B 씨 부부는 반려묘 두 마리를 오랫동안 키우고 있다. 앞으로도 아기는 갖지 않을 생각이다.
이미 아이가 있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모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SNS스타이자 자수성가한 사업가 C 씨(39)는 3살 남아 한 명을 키우고 있다. 둘째는 원치 않는데, 이유가 ‘현재 자녀를 더 잘 키우고 싶어서’다. 그는 “아내가 애한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라며 “육아에서 만족감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 둘 다 하나가 좋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너무 높은 목표치에 애초 출산이 엄두가 안 난다거나 무섭다고 말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인 20대 여성은 “아이 키울 때 보내야 하는 기관, 들여야 하는 사교육비, 시간 이야기를 들으면 감히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도 “내가 기반을 잘 구축해서 아이에게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 봐 무섭다”고 했다.
●육아 자체보다 결과가 더 중요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답변에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었던 건 아이와 육아 그 자체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내는지, 그 양육결과에 무게를 두는 듯한 뉘앙스 때문이다.
앞서 버스의 두 여성이 다자녀 가정을 안쓰럽게 보았던 이유도 그런 맥락이었을 거다. 잘 키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녀 수가 많은 집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 가구의 재화와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자녀가 많으면 더 쪼개어 나눠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녀를 많이 낳는 가구가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실제 인터뷰한 20대 여성 중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가 ‘가난해서 애 낳는 건 죄’라는 거다. 2세를 낳을 거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줘야지, 그런 것도 없이 둘, 셋 여럿 낳는 건 아이 인생을 망치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아이를 전혀 양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뒤 방기하거나 학대하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에서 낳은 아이들도 투자와 미래가치라는 프레임으로 우선 본다는 건 어쩐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함께 나누는 시간, 고민, 행복, 그 모든 것이 육아
미국 현지 대학에서 대학강사로 일하고 있는 D 씨(45, 여)는 원래 학위만 따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고민 끝에 남편, 초등학생 아이 둘과 함께 미국에 남기로 했다. 부부 모두 미국엔 전혀 연고가 없다. 이민은 순전히 자녀들 때문이었다. D 씨는 “한국에선 아이 키우면 ‘이거 해야 하고 저거 해야 하고’ 이런 게 너무 많더라”며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게 아니라 다들 아이를 특정 성공의 롤모델대로 만들어야 하는 태스크를 짊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민을 결정했다”고 했다.
아이를 풍족하게 키우거나 잘 키워 성공시켜 나쁠 건 없지만, 육아에서 무엇보다 중심이 되어야 할 건 아이와 부모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그런 육아의 과정이다. 그리고 아이를 갖느냐 안 갖느냐 선택에 있어서도 그런 것들이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네 아이에게 값비싼 교육과 옷, 집을 주진 못했지만, 매일 저녁, 주말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이 행복했고, 비록 부딪힐지언정 어떤 미래를 그릴지 함께 구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아이들 덕분에 울고 웃는 그 모든 시간이 육아였고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생각해 보면 잘 키운다는 것도, 꼭 번듯한 미래를 갖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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