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뒤 사건 은폐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33)가 24일 구속됐다. 9일 사고를 낸 후 보름 만이다. 영장을 심사한 판사는 김 씨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그가 사고 직후 매니저에게 대리 출석을 요구하는 등 사건 은폐에 가담한 점을 언급하며 ‘힘없는 이에게 (죄를) 떠넘기려 했다’는 취지로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 판사 ‘金, 사회 초년생에게 떠넘기려 해’ 질책
서울중앙지법 신영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김 씨에게 특정범죄가중법상 도주치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범인도피 교사 등 혐의로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 씨 소속사 대표 이광득 씨(41)와 본부장 전모 씨도 구속됐다. 이 씨와 전 씨는 김 씨 매니저에게 거짓 자수를 지시하고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없앤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이날 낮 12시 반경부터 약 50분간 진행된 김 씨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신 판사는 김 씨에게 ‘똑같은 사람인데 김 씨는 처벌받으면 안 되고, 힘없는 사회 초년생인 막내 직원은 처벌받아도 괜찮은 것이냐’는 취지로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가 사고 직후 20대 초반인 소속사 직원에게 전화해 경찰에 대신 출석해 달라고 요구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구속 전 심문에서 판사가 피의자를 꾸짖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이 직원은 ‘겁이 난다’며 김 씨의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씨의 다른 매니저가 김 씨의 옷을 입고 경찰에 대리 출석해 거짓 자백을 했다.
검찰은 이날 심문에 참석해 김 씨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A4용지 수십 장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단순한 음주운전을 넘어서 도주·은폐 시도 혐의가 중대하고, 추가 증거 인멸이나 도주를 할 우려가 있어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씨는 오전 11시경 검은 양복에 흰 셔츠 차림으로 법정에 들어가며 혐의 인정 여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진심으로 죄송하다. 오늘 있을 심문 잘 받겠다”라고만 답했다. 오후 1시 23분경 심사를 마치고 법원에서 나온 김 씨는 증거 인멸 관여 등을 묻는 말에 “죄송하다”라고만 7번 반복했다.
● “성실히 수사” 다짐 후 폰 비번 숨겨
중대한 인명 피해가 없는 음주 뺑소니 사건은 불구속 상태로 수사와 재판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김 씨도 만약 사고를 내고 달아난 직후에 자수했다면 구속영장까지 청구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 씨 측이 조직적, 반복적으로 증거를 없애고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하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게 오히려 화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씨는 19일 음주운전을 시인하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가 그 후에도 수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경찰에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다가 영장을 통해 압수되자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것. 이 때문에 수사팀은 아직 김 씨의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24일 영장실질심사에서 판사가 이에 관해 묻자 김 씨 측은 “사생활이 담겨 있어서 비밀번호를 알려줄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가 블랙박스 메모리카드 제거에 직접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김 씨에게 범인도피 방조 혐의를 적용했는데, 사고 차량 블랙박스를 김 씨가 직접 빼냈을 가능성도 열어둔 셈이다.
또 경찰은 김 씨가 사고 전 음주량을 축소해서 진술하는 등 ‘반쪽짜리 시인’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기록과 유흥주점에 동석한 접대부 진술 등을 통해 그가 사고 전 소주 3병가량을 마셨다고 봤다. 하지만 김 씨는 소주 3, 4잔 등을 포함해 총 10잔 이내의 술을 마신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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