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유사수신 불법이지만 투자자 계약은 법적 효력 있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7일 16시 27분


유사수신업체와 맺은 투자계약이라도 법적 효력은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현행법상 유사수신업체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투자자가 유사수신업체와 맺은 각종 계약까지 일률적으로 무효로 해선 안 된다는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부실채권 관리업체 A 사의 회생절차 관리인이 투자자 B 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B 씨는 2018년 6월 A 사에 3000만 원을 투자한 뒤 2019년 7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합쳐 3580만 원을 돌려받았다. 이후 A 사를 운영한 부부가 경기 포천 일대에서 부동산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A 사는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관리인은 2022년 9월 “현행법이 유사수신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기반한 투자계약도 무효”라며 B 씨를 상대로 원금과 법정이자 등을 제외한 429만 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다. 부부는 올 3월 징역 25년과 징역 20년이 각각 확정됐다.

1·2심은 “유사수신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성이 있지만, 투자약정까지 무효라고 해석하면 도리어 유사수신행위를 한 사람이나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익을 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유사수신행위법 제3조는 불법행위를 처벌하고 그 효력까지 무효로 하는 효력규정이 아니라 단속규정”이라며 “유사수신행위로 체결된 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법상 효력을 가진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유사수신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사정 때문에 체결된 계약의 효력이 당연히 부정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소액 사건(소송가액 3000만 원 이하인 사건)에 하급심과 대법원이 판결 이유를 이렇게 상세히 밝히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대법원이 법령 해석에 대해 판단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하면 국민 생활의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유사수신 관련 피해가 증가하는 가운데 관련법 규정에 대한 하급심 판단이 엇갈리자 대법원이 명시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법#유사수신#투자자 계약#유사수신업체#대법원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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