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령운전자 논란’ 직후… 경찰국, 경찰청에 “주요 정책 미리 보고하라” 지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8일 11시 07분


일각 “경찰 장악 현실화 우려”

행정안전부가 경찰청에 “주요 정책을 국가경찰위원회보다 행안부 경찰국에 미리 보고하고 진행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28일 파악됐다. 경찰청이 국토교통부와 함께 발표한 ‘고령운전자 조건부 면허제’가 고령자 이동권 침해 논란을 일으킨 데 따른 것이다.

설익은 정책이 혼선을 초래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게 행안부와 경찰의 설명이지만, 일각에선 “행안부가 이번 기회에 경찰 장악력을 높이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경찰국 신설 전 밝힌 ‘국가경찰위 사전 심의·의결 후 행안부 승인’이라는 원칙을 명시적으로 무너뜨리는 조치라는 것이다.

● 행안부·경찰청 “사전 보고는 필요한 절차”
28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행안부 경찰국은 지난주 불거진 ‘고령운전자 조건부 면허제’ 논란 직후 경찰청 기획조정관실에 “국민 생활 편의와 관련된 주요 정책은 미리 행안부에 보고하고 진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행안부는 특히 ‘행안부 장관의 소속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을 근거로 들어 ‘국가경찰위에 보고하기 전’에 미리 행안부에 보고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규칙은 2022년 8월 행안부 경찰국 설치 때 만들어진 것으로, 이에 따르면 경찰청장은 법령 제·개정이 필요한 경찰의 중요 정책 사항이 있을 때 행안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행안부는 이런 사전 정책 보고와 검토가 “꼭 필요한 절차”라는 입장이다. 행안부 고위관계자는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법령 중 국민 인권, 국민 생활 편의와 관련된 주요 정책은 국가경찰위에 가기 전에 미리 (행안부 경찰국에) 보고해달라는 취지”라며 “(설익은 정책을) 먼저 발표해 나중에 문제가 터지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행안부 경찰국 지휘 지침에 주요 정책에 대해서는 경찰청과 서로 협력하게 돼 있다”며 “장관이 필요한 법을 발의하는 국무위원인 만큼, 주요 입법 사안은 입법예고 하기 전에 보고받아야 한다”라고도 했다.

경찰청 역시 사전 검토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향후 행안부 경찰국을 포함해 여러 절차를 거치면서 정책을 크로스체크하는 개념”이라며 “우리 자체적으로도 (정책의 적절성을) 검토하는 회의체를 만드는 한편, 국민적 시각에서 다른 오해를 낳는 부분이 없는지 살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특히 범정부 차원의 조치이지 경찰 내부에서 비롯된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뿐 아니라 모든 부처가 꼼꼼히 사전 정책 스크리닝에 나서는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 “국가경찰위 거수기로 전락”
다만 경찰 안팎에서는 이런 사전 보고 절차가 처음 경찰국 설치 당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밝힌 의사결정 구조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장관은 2022년 7월 15일 브리핑 당시 “(경찰의 주요 정책은) 국가경찰위 사전 심의·의결을 거쳐서 행안부 승인을 받는 형태로 간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022년 7월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계획안이 담긴 경차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실상 행안부 장관 직속의 ‘경찰국’은 같은 해 8월 2일 출범했다. 동아일보DB
더 나아가 국가경찰위의 실질적 권한을 없애고 뼈대만 남기는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경찰위는 형식상 경찰 관련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경찰의 주요 정책은 국가경찰위의 심의·의결을 받아 집행되는 구조로 운영돼왔다. 경찰 관계자는 “행안부 사전 검토를 거치게 되면 국가경찰위는 말 그대로 거수기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고위관계자는 “국가경찰위의 경우 먼저 (정책 승인을) 하고 나중에 문제가 터지는 방식이다보니 (사전에 논란을 막기 위해) 미리 보고를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국토교통부·경찰청은 “고령자의 운전 자격을 제한적으로 관리하겠다”고 20일 발표했다가 이동권 침해 논란이 일자 하루 만인 21일 “오해였다”며 진화에 나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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