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경찰이 능청스럽게 같은 ‘피싱범’ 연기를 하며 정보를 캐내 일당을 검거했다.
28일 경찰청이 공개한 전화 녹취파일에 따르면, 경기 고양시 일산서 보이스피싱 수사팀에 근무하는 김모 형사는 “안녕하세요. 씨O캐피탈 강OO입니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피싱범 A 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고객님 저희가 이번에 연금리 5.4%에 신용과 무관한 당일 대출 상품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형사는 “그렇게 해서 밥 먹고 살겠어? 좀 프로답게 해봐. 나 따라 해봐”라며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씩씩하게 같은 멘트를 읽어줬다. 그러자 ‘동종 선배’라고 생각한 피싱범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김 형사는 “어느 나라에서 일해? 중국이야 필리핀이야? 나 다 알아. 옛날에 하다가 왔어. 요즘 직원들 수수료 20% 주나?”라고 연기했다.
A 씨는 “필리핀 마닐라입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 너무 더워요. 13% 줘요”라고 하소연했다.
김 형사는 “야 완전 도둑이네. 나 땐 20%였는데 어떻게 13%밖에 안 주나”라고 대화를 이어갔고, A 씨는 “그래요? 혹시 다른데 아시는데 있으세요?”라며 관심을 보였다.
그런 통화가 있은 후 며칠 뒤 또 A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 형사가 “또 너냐? 나 땐 주말엔 여행도 시켜주고 그랬는데 요즘 빡세네. 너네 오너 진짜 악질이다”라고 하자 A 씨는 “저희가 외출 금지당했어요”라고 토로했다.
이후 정보를 파악한 김 형사는 다른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이 필요하다”고 연기했다. 피싱범은 신규로 핸드폰을 개통해 보내주면 대출해 주겠다며 “새로 산 핸드폰을 쇼핑백에 담아서 박스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퀵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핸드폰을 받으러 온 배달원(일당)과 공범 1명을 검거했다. 이후 지속적인 수사를 통해 피싱 일당과 관리책 등 7명을 검거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
- 좋아요
- 0개
-
- 슬퍼요
- 0개
-
- 화나요
- 0개
-
- 추천해요
- 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