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64)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63)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금으로 약 1조3800억 원을 지급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현재까지 알려진 이혼 소송 재산분할금 중 최대규모다.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30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170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22년 12월 1심을 맡은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부장판사 김현정)가 인정한 위자료 1억 원, 재산분할금 665억 원보다 20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SK의 가치 증가나 경영 활동에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최 회장의 재산은 모두 분할 대상”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식회사 지분은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이 SK로 건네졌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SK그룹은 충격에 빠졌고 총수 리더십에도 타격을 입었다. 최 회장의 자금 마련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룹 지주사인 SK주식회사 보유 지분 일부를 매각해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 회장의 경영권이 직접 영향권에 드는 셈이다. 이날 최 회장 측은 즉각 상고 의사를 밝혔다.
● 법원, ‘노태우 비자금’ 유입 인정
항소심에선 SK주식회사의 주식이 형성되는 과정에 노 관장 측이 기여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노 관장 측 기여가 인정된다면 재산분할금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1심에서 노 관장은 위자료 3억 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50%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노 관장이 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SK주식회사 주식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SK그룹의 다른 계열사들 주식 형성 기여만 일부 인정해 재산분할금을 665억 원으로 산정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존재와 역할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1991년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종현 SK 선대 회장에 상당양의 자금이 유입됐다”며 “SK가 모험적인 사업과 경영을 시도할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방패막이’가 되어 사업을 성공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1990년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약 343억 원이 최종현 전 회장 등에 전달돼 증권사 인수와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또 1988년 결혼 당시 양쪽 모두 재산이 없었으므로 현재의 재산은 대부분 혼인 생활 중 ‘부부공동체’가 형성한 것으로 판단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2015년 최 회장이 혼외자의 존재를 알리면서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노 관장은 2심에서 위자료를 30억 원으로 높이고, 재산분할금도 주식이 아닌 ‘현금 2조 원’으로 변경한 바 있다.
● “일부일처제 전혀 존중 안 해”
항소심 선고는 이혼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약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재판부는 △혼인관계 파탄 사유 △노 관장의 정신적 고통 등을 세세히 언급하며 최 회장을 질타했다.
재판부는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2019년 2월부터 신용카드를 정지시키고 1심 판결 이후에는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며 “1심과 같이 혼인 생활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는 원고(최 회장)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정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최 회장을 질타했다.
재판부는 또 “혼인 파탄의 정신적 고통을 산정한 1심 위자료 액수가 너무 적다”면서 “최 회장은 별거 후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과의 관계 유지 등으로 219억 이상을 지출하고 가액 산정 불가능한 경제적 이익도 제공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선고 후 노 관장 측 변호인단은 “일부일처제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깊게 고민해주신 (재판부의) 훌륭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며 “판결문을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번 재판의 과정과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며 ““상고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 “늦게 갚으면 연 5% 이자도”
재판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합계 재산을 약 4조원으로 보고, 재산분할 비율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정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확정 판결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로 계산한 이자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만약 최 회장이 재산분할금을 1년 동안 주지 않는다면 노 관장에게 줘야 하는 이자만 690억 원이 넘는 것이다. 노 관장 요구대로 재산분할금은 모두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최 회장 측이 상고하겠다고 밝혔지만 법조계에선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가사 사건은 3심까지 가는 경우 자체가 드물고, 3심에 가더라도 원심 판결이 잘 뒤집히지는 않는다”며 “다만 이 소송은 쟁점이 복잡하고 사안이 다양한만큼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 양측이 일정 금액에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할 가능성도 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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