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흘러간 ‘노태우 비자금’…국고환수 대신 노소영 몫,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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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5월 31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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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혼 소송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이 30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위자료 액수도 1심 1억원에서 20억원으로 대폭 올렸다. 사진은 지난 4월 16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기일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뉴스1DB) 2024.5.30/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혼 소송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이 30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위자료 액수도 1심 1억원에서 20억원으로 대폭 올렸다. 사진은 지난 4월 16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기일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뉴스1DB) 2024.5.30/뉴스1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이 SK에 유입됐다는 판단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불법으로 조성된 비자금인데 이를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할 경우 ‘합법화’가 이뤄진다는 이유에서다. 일부에서는 국가가 이를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최 회장 측도 설령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이 최종현 SK 선대 회장에게 유입됐더라도 불법 자금에 해당해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형사재판과는 달리 가사소송에서는 분할 대상 재산의 불법성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일어난 일이어서 국가가 몰수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평가다.

◇ 재판부, 盧 비자금 SK 유입 인정…비자금 불법인데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 김옥곤 이동현)는 지난 30일 두 사람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1조 3808억 1700만 원, 위자료로 20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산 분할 액수가 665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2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재산 분할 액수가 많이 늘어난 것은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 자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1991년쯤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 회장 부친인 최 선대 회장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며 SK그룹의 주식 형성과 가치 증가에 노 관장 측의 기여가 있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 측이 항소심에서 제출한 50억 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노 전 대통령과 최 선대 회장의 거래 증거로 봤다.

최 회장 측이 “노 관장 측이 1990년대 발행된 약속어음을 계속 보관하고 있었는데도 1심에서 제출하지 않다가 항소심에서 새로운 주장을 하며 제출했으므로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가족끼리의 비밀이었던 약속어음의 존재가 알려지면 논란이 되는 데 더해 그룹 경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관계자들을 설득한 뒤에야 약속어음을 제출할 수 있었다는 노 관장 측 설명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였다.

‘불법적인 자금’의 분할이 적법하지 않다는 주장 역시 1991년 당시 최 선대 회장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은 것 자체는 당시 형사상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아울러 “2001년 9월 제정된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의하면 비자금을 수수·은닉한 자는 형사 처벌되고 범죄수익은 몰수 대상”이라며 “1991년 내지 1992년 당시 범죄수익 은닉행위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 않았더라도 2001년 11월 법 시행 이후에도 은닉행위를 유지했다면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후적인 입법에 따라 기존 법률관계의 법적 성격이 변동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노 관장 측이 노 전 대통령 측의 금전적 지원을 기여 측면에서만 주장하고 있을 뿐 지원을 반환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

아울러 최 선대 회장 쪽으로 유입된 비자금은 최 선대 회장의 의사에 따라 처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도 봤다.

◇ 가사소송에선 출처 불법성 판단 안해…국가 몰수도 현실적으로 어려워

법조계에서도 통상 가사소송에서는 ‘불법 자금’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하고, 출처의 불법성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않아 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황수철 변호사는 “이혼소송에서 부부가 탈세 제보를 하더라도 불법으로 형성된 재산이라는 이유로 재산상 기여도에서 배척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재산분할에 있어서는 직권이 강하게 적용된다. 재산 형성과 관련한 적법성보다는 실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우리 법무법인 새록 변호사 또한 “가사에서는 형사와 다르게 불법적으로 취득한 증거에 대해 통상 인정을 다 해 주고 증거능력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이것이 정말 불법 비자금인지, 어떤 형태로 형성됐는지를 크게 파헤치는 재판도 아니었기에 단순히 노 전 대통령 측에서 사위 쪽에 도움을 제공했다는 것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조수영 법무법인 에스 변호사는 이에 더해 “가사소송에서 재판장이 양가 부모의 자금이 어떻게 흘러 들어갔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고, 이번처럼 불법을 직접 명시한 것은 보기 드물다”며 “실제로 자금의 불법성은 형사사건인데, 자금의 불법성 여부는 가사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채 변호사는 “1심은 SK 주식은 최 전 회장에게 증여받은 금원으로 취득했다고 봤는데, 2심은 그 돈의 출처가 노 전 대통령과 관련 있고 이후에도 정권의 유·무형적 도움이 있어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해당 주식은 혼인 기간에 취득한 것인데, 일반인의 이혼 사례를 보면 혼인 기간 중 취득한 재산은 한쪽 명의이더라도 공동재산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재벌가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어 ‘특유재산’이라고 하며 다 뺐는데 이 건은 원칙적으로 부부 공동생활하면서 한쪽이 취득해 공동재산으로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재산분할의 근거가 된 노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 원을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이 이미 ‘5공 청산’을 통해 추징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채 변호사는 “불법 비자금이 흘러 들어가 얼마로 불었는지 특정돼야 환수하겠지만 어려운 일이고, 당사자들은 모두 사망한 상황”이라며 “국민 염원과는 다르게 현실화해 절차가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짚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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