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두 청년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요리하기를 좋아했던 장중한 씨. 고향인 부산에서 관련 사업을 하던 중 심장에 이상 신호가 왔다. 10년 전 어머니가 귀촌해 있던 전남 고흥으로 지난해 휴양을 왔다가 포두면 신촌마을 이장이던 정지영 씨를 만났다.
“모자와 문화예술 관련 활동을 함께 하면서 그의 성실함과 기획력, 사고의 유연함에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마침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지원 사업에 응모하려던 정 이장은 장 씨를 기획팀장으로 전격 채용했다. 호남 최남단 고흥에 자리잡은 청년마을 ‘신촌꿈이룸마을’의 기획서가 탄생했고 최종 선정됐다. 정 이장의 선발 능력이 귀한 인연을 이룬 사례다.
‘신촌꿈이룸마을’의 눈과 귀, 목소리를 담당하는 홍보팀장 김진우 씨도 마찬가지다. 대구에서 방송일을 하던 그는 직장 상사와의 마찰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고 그로 인한 대인기피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전국의 청년마을 일곱 곳을 차례로 방문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마을이 바로 정 이장과 장 팀장이 막 런칭한 ‘신촌꿈이룸마을’이었다. 김 씨의 사진촬영감각과 영상편집 능력을 캐치한 정 이장이 함께 일할 것을 제의했던 것.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능력 뒤편이 있는 아픔을 알게 되었고, 활동을 통해 서로를 보완하고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5월 18일 기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마을 이곳저곳을 안내해 준 장 팀장과 김 팀장은 얼굴에 건강이 넘쳐흘렀다. 표정과 말 속에는 나로호 발사장으로 유명해진 땅끝 고흥의 건강한 자연이 흠씬 묻어났다. 마복산과 비봉산, 고흥 바다에 둘러싸인 조용한 촌마을이 주는 아늑함. 자신의 재능이 좋은 일에 쓰인다는 자기 효능감, 누군가 나의 내면을 알아보고 소통해준다는 안정감 등이 두 청년의 마음을 치유했던 것이다.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소임을 주는 일. 청년마을을 이끌어가는 정 대표의 ‘인재 채용 리더십’이다.
정 대표 또한 험한 도시와 해외 생활을 뒤로 하고 2015년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정착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11년 동안 일본에서 관광 등 서비스업종에서 일했다. 한국와 일본 도시의 빌딩, 자동차, 네온사인…. 반복되는 일상에 번아웃이 찾아왔음을 느낀 그는 조상이 대대로 살아왔고 지금도 일가가 있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기 시작했다. 농사작업원, 태양광 공사장 일용직, 오이상하차, 농막 수리 등 다양한 일거리를 전전하면서 지방에서도 충분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고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온 청년들과 마을 공동체 활동을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고 내 편으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고향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외지 청년들을 불러들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콘텐츠 기획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의 농사, 취미, 공동작업 활동 등을 사진으로 남겨 외지에 사는 가족들이 찾는 명절에 마을 사진전을 열고 사진이 담긴 앨범과 달력을 가족에게 전달했다. 앵무새 체험장, 마굿간, 서핑스쿨 등 동료 정착 주민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묶었다. 지자체의 공동체 사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마을 편백숲 쉼터 조성, 신촌꿈이룸센터 건축 등 유무형의 마을 자산을 창출했다. 신촌마을 주민들은 이런 노력을 인정해 정 대표를 고흥에서 가장 어린 이장님(2022∼2023년) 으로 만들어 주었다.
행안부가 2018년부터 조성한 전국 39개 청년마을 대표 가운데 최고령인 그는 동생 조카뻘인 20, 30대 대표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멘토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외부 협력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마을의 운영진은 어머니가 저보다 어렸어요. 처음엔 이질감도 많이 느꼈지만 젊은 에너지와 사업수완에 감탄하며 한편으론 뒤지지 않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생 선배로서, 로컬 생활을 미리 경험한 삼촌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니 상담자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지역 주민이나 지자체 관계자들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는지, 나와 사업을 어떻게 잘 어필할 수 있는 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한다. ‘들어주어서 감사해요’ ‘주위에 선배님 같은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난다.
고흥 지역의 다른 청년단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자체와의 협력 방안을 찾아 지역적 시너지를 내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그는 고흥군의 청년 공동체 지원사업 심사에 참여한 뒤 저녁 식사 자리에 합류했다.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들어 운영하는 ‘관광두레’ PD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 고흥 지역사회의 중요 인물이 됐다. “어떤 것이 청년을 부르고 어떤 것이 떠나가게 하느냐”는 질문에 “사람”이라고 답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힘든 줄 모르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청년들은 아직 경험이 적을 뿐이지 능력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로컬에서 꿈을 이루고 살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관계를 통해 전달되는 응원의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녁 식사 자리 내내 정 대표와 장 팀장, 김 팀장 등은 최근 유명한 서울대 황농문 교수의 ‘몰입’을 주제로 청년 체류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지 토론을 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를 외치는 그들은 지역살이를 통한 청년들의 힐링을 넘어 정신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영적인 리더십’을 키워가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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