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33주 고위험 쌍둥이 임신부 2시간여만 전원
"빅5병원·충청권 모두 수용 어려워 겨우 찾아내"
"소송부담 소아과 기피심화 분만 인프라 무너져"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으로 의료 공백이 장기화 하면서 저출산 극복의 디딤돌이 돼야 할 ‘분만 인프라’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양수가 터진 임신 33주된 고위험 쌍둥이 임신부가 ‘빅5’ 병원을 비롯한 대학병원 20여 곳의 “수용불가” 통보로 2시간여 만에 미숙아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겨우 찾아낸 것으로 파악됐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경기도에 거주하는 임신 33주된 쌍둥이 임신부 A씨는 지난달 30일 갑작스럽게 양수가 터져 미숙아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긴급 전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양수가 터진 지 2시간여 만에 유일하게 전원이 가능한 서울 서부의 B 대학병원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A씨가 내원했던 경기도의 한 산부인과 의원 C 원장은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조기 양막 파수가 발생해 더 위험한 고위험 임신부였다”면서 “당직 중인 의사가 ‘빅5’병원과 충청권까지 전원을 요청했지만 어렵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제가 몇 군데 더 알아보다가 전원 가능한 병원을 겨우 찾아냈다”면서 “양수가 터진 지 1시간 정도 지나 119 구급대에 인계됐고 2~3시간 정도 걸려 전원됐다”고 했다.
조기 양막 파수란 임신 37주 이전 양막이 파수되는 것을 말한다. 제대 탈출(탯줄이 아기보다 먼저 질을 통해 나오는 것), 자궁 내 감염, 조기 진통 등의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C 원장은 마지막으로 친분이 있는 산부인과 명의 D 교수에게 연락해 전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A씨는 D 교수가 있는 병원으로 전원됐다. 현재 A씨는 항생제를 쓰면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A씨의 보호자인 남편 E씨는 “정말 절박했고, 병원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1시간 반 동안 대학병원을 알아봐 주시는데 진짜 전쟁통 같았다”면서 “의료진이 ‘빅5’를 포함해 총 25곳의 병원에 전화를 돌렸는데 전부 거절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병원을 알아봐 주신 의료진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에 손 편지와 음료수를 전달해 드렸다”고 했다.
A씨는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이다 보니 만일에 대비해 응급 수술이 가능하고, 미숙아 치료와 관리가 가능한 신생아 세부 전문의가 있고, 임신 37주 미만 고위험 신생아를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빈 병상도 2개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인력이나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병원을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C 원장은 “현재 수술에 꼭 필요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부족해 마취가 쉽지 않아 대학병원에서 야간에 수술이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신생아 중환자실을 담당할 세부 전문의가 부족하거나, 역량 부족으로 임신 34주 이상인 임신부만 진료 가능하다는 병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마취과 인력 부족은 지난 2월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한 영향이 없진 않지만,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발생한 신생아 사망 사건을 계기로 소아청소년과 기피가 심화되면서 분만 인프라가 무너진 것이 주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부인과 세부 전공인 ‘산과’ 전문의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소아과 지원 급감에 따른 신생아 세부 전문의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D 교수는 “고위험 산모를 수용할 수 없는 대학병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면서 “전공의들이 수련을 많이 하지 않는 대학병원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분만 인프라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대목동병원 사건으로 기소된 의사들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소아과 의사를 하다가 나도 수갑을 찰 수도 있겠구나’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최근 몇 년 새 소아과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면서 “소아과를 살리지 못하면 산부인과의 미래도 없다”고 했다.
정부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대 증원에 나섰지만 의료 소송 부담부터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가 많아지면 필수의료 의사도 늘어날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 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 부담 경감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C 원장은 “의대생이 늘어나도 의료 소송으로 10억대 배상 판결이 나오는 상황에서 누가 필수의료를 지원 하겠느냐”면서 “사명감에 필수의료를 지원해도 의료 소송으로 가정이 망가진다면 누가 하겠는가. 국가가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를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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