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보다 9곳 늘어 작년 72곳… 과천-의왕 등 수도권 지역도 다수
22곳엔 산부인과 병의원조차 없어
분만가능 동네병원 10년새 절반↓
정부 “분만실 지원금-수가 인상”
“지난해 10월 아들을 낳은 여성병원이 조만간 폐업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함께 운영하던 산후조리원은 이미 문을 닫았더군요. 조만간 둘째가 생기면 그 병원에서 낳으려 했는데….”
서울에 사는 김모 씨(32)는 “집에서 걸어갈 거리에 있는 여성병원이 문을 닫으면 출산할 곳이 차로 20분 이상 가야 하는 대형병원 한 곳밖에 안 남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올 1분기(1∼3월) 합계출산율이 1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저인 0.76명을 기록하는 등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면서 수도권을 포함해 거주지 인근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지역이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지자체 10곳 중 3곳은 분만실 없어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250곳 중 72곳(28.8%)에 분만실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군구 10곳 중 3곳에 분만실이 없는 셈이다. 분만실이 없는 기초지자체는 2017년(63곳)에 비해 9곳 늘었다.
72곳 중 22곳에는 아예 산부인과 병의원이 하나도 없었다. 나머지 50곳의 경우 산부인과는 있지만 분만실을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경기 시흥시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는 오상윤 원장(대한분만병의원협회 사무총장)은 “19년 전 처음 개원했을 땐 지역에 분만할 수 있는 병원이 10여 곳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병원만 남았다. 병원 문을 닫진 않더라도 아이를 더 이상 받지 않고 부인과만 하는 곳이 많아졌다”고 했다.
분만실이 없는 기초지자체 중 상당수는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농어촌 지역이었지만 경기 과천·의왕·안성시, 경기 용인시 처인구, 울산 북구 등 수도권 및 광역시 지역도 다수가 ‘분만실 제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광역지자체별로 보면 전남이 분만실 없는 기초지자체 13곳이 있어 가장 많았고 경북(11곳), 경기(9곳), 경남(8곳) 등이 뒤를 이었다.
병원 규모별로 보면 수익과 리스크 관리에 민감한 동네 병원(의원급) 중심으로 분만 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10년 새 분만이 가능한 의원급 기관은 409곳에서 195곳으로 50% 이상 줄었다. 분만실을 운영하는 병원급과 종합병원급 의료기관도 줄긴 했지만 감소 비율은 각각 9.7%, 11%에 그쳤다.
●고위험 분만비 등 연 2600억 원 투입
분만할 곳이 사라진 지자체에선 아이를 가질까 고민하던 부부들이 출산을 결심하기가 더 어려워져 소멸 위기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장은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도 ‘분만은 안 하겠다’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출산 인프라가 회복될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복지부는 분만실이 없어 출산을 포기하는 걸 막기 위해 아이를 받을 병원이 없거나, 있더라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군구 108곳을 선정하고 해당 지역에서 분만실을 운영하면 시설·장비 및 운영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전년 대비 시설·장비 지원금 한도를 10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운영지원금 한도는 2억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높였다. 또 이달부터 고위험 임신부에 대한 분만비를 최대 200% 올리는 등 분만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되는 진료비) 인상에 연 2600억 원의 건보 재정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다만 의료계에선 수가를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분만 중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덜어줘야 출산 인프라가 개선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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