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미분양, 1341채로 최다
읍면 지역이 전체 70% 육박
투자자 겨냥 ‘고분양가’ 확산
도, 공공 매입 방안도 추진
2일 제주시의 한 읍(邑) 지역. 풀숲 사이로 갓 지은 빌라 4개 동(20여 채)이 우뚝 서 있었다. 인근 현수막에는 ‘프리미엄 주택단지’ ‘높은 투자가치’ 등의 문구가 쓰여 있었는데, 분양 가격이 한 채당 4억∼5억 원으로 책정돼 있었다. 현재 이 빌라를 분양받은 가구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해당 빌라가 입지에 비해 과하게 비싸다고 했다. 한 주민은 해당 빌라에 대해 “위치가 마을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다. 도로도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로 포장돼 있고, 가장 가까운 편의점도 1km 가까이 떨어져 있어 여건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인근 주민 중에서는 해당 주택을 구매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 악성 미분양 1300여 채, 역대 최다
제주의 미분양 주택이 역대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읍·면까지 확산한 ‘고분양가’ 영향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4일 제주특별자치도 등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도내 미분양 주택은 2837채로 역대 최다였다. 이 중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 역시 1341채로 역대 가장 많았다.
3월 기준 읍면동별 미분양 주택(2485채)을 보면 읍·면 지역 미분양 주택이 1735채로 전체의 69.8%였다. 애월읍이 616채로 가장 많았고, 대정읍 376채, 안덕면 293채, 조천읍 263채, 한경면 185채 순이었다. 읍·면 지역 미분양 주택이 쏟아진 이유에 대해 제주도는 실수요자가 아닌 외지인과 투자자를 겨냥한 ‘고분양가 주택’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실제 3월 기준 읍면 지역 미분양 주택(1735채) 가운데 5억 원 이상이 955채(7억 원 이상 828채)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미분양 주택 여파로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제주 주택 인허가 건수는 총 1137건에 불과했다. 특히 4월 한 달간 인허가 건수는 178건에 머물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4월) 2052건에 비해 44.6% 감소한 수치이며, 4월로 따지면 지난해(742건)보다 76% 급감했다.
● 제주도, 신규주택 승인 제한 검토
미분양 사태가 심화하면서 제주도는 신규주택 승인 제한과 공공 매입, 승인 취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 먼저 신규주택 승인 제한은 미분양이 집중되는 읍·면 지역을 대상으로 검토, 추진한다. 미분양 주택이 더 증가할 경우 주택건설 실적과 미분양 발생·추이, 실수요 현황 등을 검토해 승인 제한 시점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어 제주도는 기존 주택 매입 단가 범위 내에서 준공 후 미분양 주택에 대한 공공 매입 방안도 추진한다. 또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날부터 5년이 지난 사업장에 대해서는 승인 취소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제주도는 올 상반기 건설사업 예산(3조723억 원)에 대한 조기 발주 및 신속 집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24년 지역건설사업 활성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미분양이 가장 많은 5개 읍·면 지역의 주택건설 사업장 관리를 강화해 나가는 한편으로 신규주택 공급 제한, 공공 매입 등 다각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올 2월 기준 제주 민간아파트의 ㎡당 평균 분양가는 750만7000원으로, 전국 평균(536만6000원)을 웃돌았다. 이는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서울(922만6000원) 다음으로 높은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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