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일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하고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의 사직서 수리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복귀 전공의에 대해선 예고했던 면허정지 처분을 중단하고 내년에 차질 없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의대 증원 절차가 마무리된 만큼 전공의들에게 ‘퇴로’를 열어주겠다는 취지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부과한 진료 유지 명령, 업무 개시 명령을 오늘부로 철회한다”고 밝혔다. 전공의들이 2월 20일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지 105일 만에 내렸던 명령을 모두 철회한 것이다.
조 장관은 또 “전공의가 복귀하면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해 법적 부담 없이 수련에 전념하도록 하고, 수련 기간 조정 등을 통해 필요한 시기에 전문의를 취득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했다. 다만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선 “의료현장 상황, 전공의 복귀 비율, 여론 등을 감안해 대응하겠다”며 면허정지 가능성을 열어놨다.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에서 물러섰다는 비판에는 “현장 의료진이 지치고 중증질환자의 고통이 커져 정책 변경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항의성으로 사직서를 낸 전공의가 많은 만큼 실제 사직서를 수리한다고 할 경우 이탈 전공의 중 30∼50%는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전국 수련병원의 레지던트 복귀율은 8.4%다.
이에 대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내부 공지 등을 통해 “저는 안 돌아간다. 잡아가도 괜찮다”고 했다. 반면 고연차와 인기과 전공의 일부는 복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전공의 30∼50% 복귀 기대” 의사들“필수의료 안 돌아갈것”
[전공의 사태 ‘출구전략’] 전공의 이탈 105일 만에 ‘퇴로’ 내년 전문의 될수 있도록 지원 방침… 미복귀자엔 ‘3개월 면허정지’ 가능성 고연차-인기과 위주로 복귀 전망 속… 전공의 단체 “정부가 갈라치기” 반발
“전공의들은 국가로 보면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다. 정부가 내렸던 명령을 철회하고 유연하게 처리해 주면 돌아올 분들이 돌아올 계기가 된다. 돌아오기 어려운 분은 아깝고 유감스럽지만 다른 병원에서 일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에 대해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과 진료유지 명령, 업무개시 명령을 철회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정부는 지금처럼 전공의 이탈이 이어질 경우 내년에 전문의 배출이 전면 중단되며 군의관 공보의 전임의(펠로) 등의 수급이 어려워지고 의료공백이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사직서를 수리하겠다고 나설 경우 전공의 30∼50%가 복귀를 선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복귀 시 내년에 전문의 될 수 있어”
정부는 복귀하는 전공의에게는 의사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하고 내년에 전문의가 될 수 있게 지원할 방침이다. 2월 20일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의 경우 수련규정에 따르면 3개월 이상 공백이 있으면 이듬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없다. 하지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4일 브리핑에서 “(규정을 고쳐) 수련 기간을 단축하거나, 전문의 자격시험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등의 방법으로 자격 취득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예정이었던 3, 4년 차 레지던트는 2910명이다.
반면 끝까지 사직서를 내고 수련병원을 떠나는 전공의들에게는 예고했던 3개월 면허정치 처분 가능성을 열어놨다. 또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규정에 따르면 전공의 과정 중 사직한 경우 같은 과, 같은 연차로는 1년 내 복귀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에 사직한 경우 같은 병원, 같은 과에서 수련을 재개하려면 2026년 초에나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공의는 보통 연초에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충원이 필요한 과만 9월경 일부 결원을 보충하기 때문에 다른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경력을 이어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인기 과의 경우 내년 이후는 후배들까지 몰리면서 경쟁이 더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정부 발표를 두고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기존 방침에서 물러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전공의 이탈 전후 “과거 같은 사후 구제나 선처는 없다” “굉장히 기계적으로 법을 집행하겠다” 등의 입장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판을 각오하고 내린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고연차-인기과 위주로 복귀할 듯
정부는 이날 조치로 전문의가 되길 원하는 전공의 상당수가 복귀를 선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실제 얼마나 전공의들이 복귀할지는 미지수란 전망이 나온다.
필수의료 전공의 중에는 여전히 복귀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많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필수과 4년 차 레지던트는 “1년 쉴 각오를 했기 때문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 대부분 1년 쉬는 것과 수련을 아예 포기하는 것 중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병원 필수과 1년 차 레지던트는 “사직서가 수리되면 선배 병원에서 잠시 페이닥터(월급을 받는 의사)로 일하며 다른 전공을 고민해 볼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전문의 취득을 앞둔 고연차와 내부 경쟁이 치열한 인기과 전공의들은 일부 복귀를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도권 대형병원 재활의학과 전공의는 “일부 인기과는 경쟁이 치열해 다시 수련 기회를 얻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일단 수련은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복귀를 고민하는 사례도 꽤 있다”고 전했다.
전공의 단체는 ‘전형적인 갈라치기 전략’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전공의들을 하루라도 더 착취할 생각밖에 없을 텐데 시끄럽게 떠들지만 말고 행정처분을 내리라”는 등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또 내부공지를 통해 “다들 사직서가 수리될 각오로 나오지 않았나”라며 ‘단일대오 유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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