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일상 공간 파고든 마약
음식 형태로 둔갑한 마약… 기호식품으로 외형 속이고 먹여 중독 유도
“나도 모르게 먹을라” 시민들 우려 커져
현행법엔 ‘미성년자 마약 제공’만 처벌… “처벌 범위 확대-학교 교육 동시 필요”
국내 마약 확산세가 가팔라지며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약을 접할지 모른다는 시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젤리나 음료 등에 마약류 성분을 몰래 섞어서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등의 범죄가 빈발하는 가운데 강력한 처벌과 시민의 경각심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의 57곳 하수처리장을 검사한 결과 한 곳도 빠짐없이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이 검출됐다고 최근 밝혔다. 식약처가 관련 검사를 시작한 2020년 이래 매년 이런 결과가 나왔다. 하수처리장에서 시료를 채취해 잔류 마약의 종류와 양을 분석하면 인구 대비 마약류 사용량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서울에서만 검출됐던 코카인은 지난해 처음으로 세종 지역 하수처리장에서도 발견됐다. 지역별 하루 사용 추정량을 살펴보면 필로폰은 인천과 경기 시흥시, 암페타민은 광주와 충북 청주시, 엑스터시는 경기 시흥시와 전남 목포시에서 각각 높게 검출됐다. 마약 중독 치료 전문 인천참사랑병원 천영훈 원장은 “마약을 투약했지만 적발되지 않은 사람의 비율, 즉 ‘암수율’이 30배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 걸 고려하면 이미 우리 사회에 불법 마약류 사용자가 만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젤리나 쿠키 등 기호식품으로 교묘히 둔갑시킨 마약류도 확산세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외형으로는 마약류인지를 알 수 없는 식품을 자신도 모르게 먹거나 마시는 등 의도치 않게 마약에 노출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3일 검찰은 지인 3명에게 대마 젤리를 나눠 주며 섭취하게 한 30대 남성 유모 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유 씨는 4월 서울 광진구의 한 식당에서 지인 중 일부에게 대마 젤리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섭취하게 한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 마약 성분이 담긴 음료를 ‘집중력 향상에 좋다’고 속이고 건넨 일당이 검거됐다.
이런 사례가 늘어나면서 당국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25개 자치구 보건소에서 익명으로 무료 마약 검사를 해주고 있다. 마약류에 노출된 것으로 의심되지만 처벌 등 불이익이 뒤따를까 봐 방치하는 이들을 위해서다. 필로폰과 대마, 코카인 등 주요 마약류 6종이 검사 대상이다. 양성 판정 시 병원과 연계해 치료를 지원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검사자가 꾸준히 늘어 현재까지 428명이 익명 검사를 받았고, 특히 최근 두 달 새 검사자가 200명 가까이 늘었다”며 “자기도 모르는 새 마약에 노출되는 사건이 늘면서 경각심을 갖는 시민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반 식품으로 위장한 마약류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제공한 자에게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지만, 미성년자가 아닌 타인에게 몰래 마약을 주거나 투약하게 하는 경우에 대한 처벌은 규정돼 있지 않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타인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중고교에서 체계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거되지 않은 암수 사건이 많은 마약범죄 특성상 시민들 역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마약 형태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지금 시민들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어지럼증 등 마약류 섭취 의심 증상이 있을 시 바로 의료기관을 방문해 검사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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