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가까이 막내 삼촌의 생사를 몰라 사망신고조차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사망사실을 알려준 일본인 연구자가 너무 고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밀리환초 조선일 학살사건으로 숨진 근로자 고 김기만 씨의 유족인 김귀남 씨(86)는 8일 전남 담양의 한 떡집에서 일제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 씨(67)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장손인 귀남 씨는 다케우치 씨가 작성한 밀리환초(산호초가 띠 모양으로 연결된 곳) 강제 징용 조선인 사망자 명단을 통해 80여 년 동안 소식을 몰랐던 막내 삼촌의 사망 소식을 처음 알게 됐다. 농사를 짓던 고인은 19세 때 남태평양 마셜제도에 있는 밀리환초로 끌려가 22세 때 이국땅에서 숨졌다. 일본인 연구자가 고인이 숨진 지 79년 만에 유족에게 사망사실을 알려준 것이었다.
일제는 1942년 3월 마샬 제도 밀리환초에 조선인 800~1000명을 데려가 강제노역을 시켰다. 일제는 미군의 봉쇄작전으로 보급이 조선인을 살해해 인육을 먹었고 ‘고래 고기’라고 속여 배급했다. 이를 눈치 챈 조선인들이 저항하자 기관총을 난사해 학살했다. 학살희생자는 55명으로 총살 30명, 강요에 의한 자살 25명으로 파악됐다.
귀남 씨에게 막내 삼촌 사망 사실을 알려준 다케우치 씨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밀리환초에서 총기학살, 기아 등으로 숨진 조선인 218명의 명단을 최근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했다. 218명 중 214명은 전남 출신이었다. 특히 사망자 40명 가운데 25명(총살 11명, 강요에 의한 자살 14명)이 담양 출신 희생자였다.
고인도 일제의 식인에 저항하다 붙잡혀 강요로 자살한 피해자였다. 명단에는 자료명부 번호 426번, 창씨개명 이름 김산기만(金山基萬), 출생날짜, 사망 날짜(1945년 3월). 부친 성명, 주소 등이 적혀있다.
귀남 씨는 “5남매 막내였던 삼촌이 일제에 차출돼 끌려갔지만 가족들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며 “막내 삼촌이 일제에 강제징용당한지 1년 만에 편지가 와 끌려간 곳이 남양(마샬)군도라는 것을 알게 됐고 편지는 2년 동안 2차례 온 뒤 생사를 알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90세에 작고하신 할머니는 생전에 막내삼촌이 남양군도가 살기 좋아 거기에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사망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34년 동안 밀리환초 학살사건을 연구한 일본 연구가 다케우치 씨는 이날 희생자 유족을 처음 만났다. 그는 밀리환초 저항의 주축은 전남 담양의 청년들이었다고 설명했다. 다케우치 씨는 “밀리환초 희생자 대부분이 20대 청년이어서 자식이 없고 형제자매가 대부분 작고해 강제징용 진상을 밝히기 어렵다”며 “유족들이 희생자 사망 사실조차 통보받지 못한 상황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과 첫 만남은 밀리환초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연구를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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