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군립청소년관현악단
지역 전체 학생 모여 음악 교육… 감수성 키우며 공동체 의식 배워
재능기부 공연 펼치며 감동 선사… 교육공동체 성공적 모델로 주목
“앙코르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객석에서 ‘앙코르’라는 함성이 들리는 순간 너무나 감격스럽고 찡했어요.”
지난달 31일 오후 전남 여수세계박람회장 정문광장 특설무대. 700여 명의 관람객이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웅장하면서도 감미로운 오케스트라 선율이 울려 퍼졌다. ‘학교로 가는 길’ ‘지금 이 순간’ ‘캐리비안의 해적 메들리’ ‘아프리카 심포니’ 등 곡이 끝날 때마다 관람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12곡의 연주가 모두 끝나자 객석에서는 앙코르가 쏟아졌다. 지휘자가 악장에게 눈길을 주자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 연주됐다. 오케스트라의 흥겨운 연주에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하나가 됐다.
전남도교육청이 주관하는 ‘2024 대한민국 글로컬 미래교육 박람회’ 사흘째 행사가 열리던 이날 감동의 무대를 선사한 이들은 전남 곡성군립청소년관현악단이었다. 악장인 이지민 양(16·곡성중 3년)은 “너무 긴장한 탓에 ‘지금 이 순간’을 연주하면서 ‘코다’(특별히 추가된 종결부)를 놓친 것 빼고는 완벽하게 연주한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제1바이올린 연주자인 이 양은 “앙코르곡으로 3곡을 준비했다. 반응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기립박수까지 받아 3개월 동안 연습한 보람을 느꼈다”며 “공연이 끝나고 협연을 한 뮤지컬 배우가 리허설보다 훨씬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 기쁨이 두 배였다”고 환하게 웃었다.
● 청소년 꿈 키워주는 음악 배움터
곡성군 중학생들로 꾸려진 곡성군립청소년관현악단은 2020년 7월 창단됐다. 지역의 청소년 누구나 쉽게 악기를 접하게 하자는 취지로 곡성군과 곡성교육지원청, 학교가 힘을 모았다. 학교 단위로 관현악단을 구성하는 경우는 많지만 지역에 있는 전체 학교를 아울러 오케스트라를 꾸린 것은 곡성군립청소년관현악단이 처음이다.
곡성군은 인구가 2만6800여 명으로,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가장 적다. 곡성에는 곡성중, 옥과중, 석곡중 등 3개 중학교가 있는데 전체 학생이 450여 명이다. 현재 관현악단원은 160명. 전체 중학생 3명 중 1명이 오케스트라 단원인 셈이다. 고교생 24명은 명예 단원이다. 정기연주회나 특별한 행사 때 후배들과 함께 연주한다.
단장은 곡성군수, 총감독과 단무장은 악기를 전공한 현직 교장과 교사가 맡고 있다. 전문성을 고려해 지휘는 전남도립대 겸임교수인 이준행 지휘자가 창단 때부터 책임지고 있다. 오케스트라 강사진은 23명이나 된다. 광주시립교향악단 단원 등으로 구성된 강사진은 매주 수요일 방과 후 시간에 각 학교에서 파트별로 지도한다. 단원들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곡성문화체육관에서 만나 3시간 동안 합주를 하며 호흡을 맞춘다. 여름·겨울방학에 5일간 합동캠프도 연다.
관현악단 한 해 운영비는 5억 원. 3억 원은 군에서, 2억 원은 도교육청에서 지원하는데 대부분 강사비와 악기 수리비, 연주회 경비 등으로 쓰인다.
창단 연주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21년 1월 유튜브 생중계로 선보였다. 서로 합을 맞춰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자 생중계 화면에는 응원 댓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곡성 출신 유명 성악가와의 협연도 빛났다.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한 곡성 옥과고 출신 바리톤 김기훈이 협연자로 참여한 것이다. 창단 연주회는 지역사회에 큰 감동과 울림을 줬고 단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3차례 정기공연을 한 관현악단은 곡성에서 가장 큰 축제인 ‘세계장미축제’ 개막식을 음악으로 장식하는 등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 음악으로 하나가 되다
관현악단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육공동체 성공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곡성군은 인구가 줄어들면서 소멸 위기 불안감이 가중되자 통상적인 귀농·귀촌 정책으로는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교육’에 주목했다. 곡성의 아이들을 지역사회가 함께 잘 키워보자고 만든 것이 곡성군미래교육재단이다. 2020년 11월 설립된 재단은 아이들이 배움을 경험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를 찾는 교육을 지향한다. 청소년들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마음껏 펼치게끔 원하면 누구나 단원이 될 수 있다. 경제적 이유로 예술교육에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악기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실력이 다소 처지더라도 모두 무대에 서게 한다.
관현악단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가 다른 단원들은 만나면 서먹서먹했고 사소한 다툼도 있었다고 한다. 합주를 이어가면서 단원들은 하모니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음악적 조화가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도 갖게 됐다.
관현악단 산파 역할을 한 유성우 총감독(전남조리과학고 교장)은 “합주를 통해 꿈과 감수성을 키우고 공감과 협동심 등 공동체 의식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게 무엇보다 큰 소득”이라며 “단원들이 성장해 농촌에서도 성인오케스트라가 창단돼 공연하는 모습을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곡성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관현악단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허성균 곡성군미래교육재단 상임이사는 “박람회 연주를 지켜본 한 학부모는 ‘곡성에서 자식을 키우길 잘했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며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길 바랐는데 그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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