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드문 호남 내륙서 역대최대
올해 발생한 국내 지진 중 ‘최강’
규모 3.1 등 여진 17차례 이어져
서울-부산 등 전국 대부분 ‘흔들’
12일 오전 8시 26분경 전북 부안군 남남서쪽 4km 지역에서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했다. 올해 발생한 최대 규모 지진으로, 지진이 많지 않은 호남 내륙에선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기상청은 “진앙은 북위 35.70도, 동경 126.71도 지점이며 진원의 깊이는 8km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초 기상청은 지진파 중 속도가 빠른 P파를 자동 분석해 지진 규모를 4.7로 추정했으나 추가 분석을 거쳐 4.8로 상향했다.
중규모 지진 중 규모가 큰 편이었던 만큼 여진도 이어졌다. 지진이 발생하기 28분 전인 오전 7시 58분경 규모 0.5의 전진(前震)을 시작으로 본진 후에도 오후 8시까지 17차례 크고 작은 여진이 발생했다. 특히 오후 1시 55분에는 규모 3.1의 여진이 발생해 인근 주민 상당수가 진동을 느끼기도 했다.
진원의 깊이가 깊지 않았던 탓에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흔들림이 감지됐다. 진원지가 속한 전북 지역은 진도(진동의 세기로 인한 흔들림의 수준) 5로 거의 모든 사람이 지진을 느끼고 그릇이나 창문이 깨지기도 하는 수준이었다. 전남 지역은 진도 4로 실내에서 많은 사람이 느끼고 일부가 잠에서 깨거나 그릇, 창문 등이 흔들리는 정도였다. 인천, 경상, 대전, 충남북 등의 지역은 진도 3(실내나 건물 위층 사람은 현저히 느끼고 정차한 차가 흔들리는 정도), 서울 강원 부산 울산 등은 진도 2(조용한 상태나 건물 위층의 소수의 사람이 느끼는 정도)였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5시 기준으로 전북재난안전대책본부에는 벽 균열, 타일 떨어짐, 온수 배관 파손 등 피해 사례 140건이 접수됐다. 보물로 지정된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이 훼손되고 개암사 대웅전에서 불상 머리 장식이 떨어지는 등 문화재 피해도 6건 발생했다.
학교에선 등교 시간에 지진이 발생해 혼란이 컸다. 부안 지역 초중고 학생은 물론 진앙에서 약 50km 떨어진 전북 전주시에서도 학생들이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학교 18곳에선 천장 일부가 떨어지거나 벽에 금이 가는 등 건물 부분 파손 피해가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신고도 쏟아졌다. 소방청은 “전국적으로 315건의 신고가 접수됐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지진 관측 10초 후인 오전 8시 27분 1초에 전국에 경보음과 함께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정부도 즉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비상 1단계를 가동하며 대응에 나섰다. 또 지진 위기경보 ‘관심-주의-경계-심각’ 중 3단계에 해당하는 ‘경계’를 발령했다.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지진 직후 “국가기반시설 등에 대해 피해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안전 점검 등 제반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날 “진앙에서 42.6km 떨어진 한빛 원전을 포함해 현재까지 국내 모든 원자력 시설의 안전성에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호남내륙서 규모 4.0대 지진 처음… “무슨 단층 있는지도 몰라”
[전북 부안 규모 4.8 지진] 한반도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 2016년 경주-2017년 포항지진 계기… 정부, 전국 숨은 활성단층 조사 착수 지진 드문 호남지역은 후순위 밀려… 부안 여진, 최소 2~3일 이어질 듯
그동안 한반도에서도 호남권은 상대적으로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 ‘안전지대’로 여겨졌다. 지진 계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규모 4.0 이상의 지진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2010년 이후 경북 경주시와 포항시 등에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지만 호남권에선 2015년 12월 전북 익산시에서 발생한 규모 3.9의 지진이 역대 최대일 정도로 잠잠한 편이었다.
그런데 12일 전북 부안군에서 발생한 규모 4.8의 지진은 한반도와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 중 16번째, 남한 내륙에선 6번째를 기록할 정도로 강력했다. 내륙 지진으로는 2017년 11월 포항(규모 5.4)에 이어 7년 만에 최대였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전역에서 언제든 강한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 단층이 수평으로 움직여 제한적 피해
지진은 땅속에 오랜 기간 누적된 응력(에너지)이 방출되면서 지하 단층이 엇갈리거나 충돌해 발생한다. 이때 생긴 진동과 충격파로 지표면이 흔들리는 것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단층이 양쪽으로 당겨지며 어긋나는 경우 정단층, 정면으로 부딪치는 경우 역단층, 평행한 상태에서 다른 방향으로 엇갈리며 마찰을 빚는 경우 주향이동단층이 생긴다”며 “이번 지진은 주향이동단층 충돌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주향이동단층 충돌의 경우 단층이 수평으로 움직이는 만큼 단층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정·역단층보다는 피해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이번 지진이 구체적으로 어느 단층에서 발생한 것인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현재로선 해당 지역에 정보가 파악된 단층이 없다. 정확한 조사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의견도 갈린다. 최진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재해연구본부장은 “지질도 및 관측기 초동 분석 결과 함열단층 또는 이와 유사한 방향의 단층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함열단층의 경우 진앙과 20km가량 떨어져 있어 관련이 없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일부 전문가는 강원 태백부터 호남 서해안까지 이어지는 ‘옥천대’에 속한 알려지지 않은 단층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여진은 앞으로도 최소 2, 3일은 이어질 전망이다. 더 큰 지진이 올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해당 지진이 근처에 있는 다른 단층을 자극해 또 다른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 2016년 경주에서도 규모 5.1 지진이 발생한 수시간 후 규모 5.8 지진이 온 적이 있다”고 했다.
● “호남권 단층 조사 서둘러야”
정부는 2016, 2017년 경주와 포항에서 지진이 연달아 발생하자 이를 계기로 2018년 한반도 단층 연구에 착수했다. 경주 지진 당시 23명이 부상을 당했고, 포항 지진 때는 1명이 사망하고 117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두 지진 모두 기존에 지표면상에서는 보고된 적 없는 숨은 단층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상청과 행정안전부는 2042년까지 총 25년간 5단계에 걸쳐 국내 활성단층 지도를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호남 지역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져 조사 순서가 후순위로 밀렸다. 정부는 2018∼2021년 지진이 발생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수도권과 원전이 있음에도 잦은 지진이 발생한 영남권을 대상으로 활성단층 조사를 진행했다. 현재는 강원권(2022∼2026년)을 대상으로 조사 중이며 이후 충남권(2027∼2031년) 조사가 진행된다. 호남권과 제주 조사는 2032년부터 가장 마지막에 진행된다.
홍 교수는 “최근 한반도에는 지표면에선 확인하기 어려운 숨은 단층에서 지진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숨은 단층들은 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 뚜렷한 증후도 보이지 않아 사전에 인지하기 어렵다”며 “선제적인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석 부경대 환경지질과학과 교수는 “대형 지진은 주기가 길다. 1455년 전남 순천 지역에서 규모 6.0가량의 지진이 났다는 기록도 있는 만큼 호남권도 안전지대라고 보지 말고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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