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뒤면 출산인데, 만삭의 몸으로 11층까지 계단 오르기가 무서워요. 엘리베이터를 언제쯤 다시 탈 수 있을까요.”
지난 12일 낮 12시쯤 인천 중구 항동7가 라이프비취맨션 3단지에서 만난 강혜림 씨(36)는 울분을 토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들어 갑자기 아파트 단지 내 설치된 엘리베이터에 ‘운행 정지’ 행정처분이 떨어졌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구청에 조치를 취해봐도 ‘기다려달라’는 식으로 대응한다”며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11층 집까지 오르던 중 산통이 오면 어떡하나 싶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최근 인천 라이프비취맨션 3단지 건물 8개동 24대의 엘리베이터 이용이 한꺼번에 중단되면서 입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운행이 정지된 뒤부터 아파트 주민 2명이 119를 부르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지만, 정작 중구청은 이런 주민 불안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토로하고 있다.
실제로 이달 12일과 7일, 이곳 13층과 4층에 거주하는 70대 여성 A 씨와 80대 여성 B 씨가 호흡곤란 등을 보였다.
당시 소방대원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하자 구급 상황 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바퀴가 달린 ‘주들것’이 아닌, 사람의 힘이 전적으로 필요한 ‘들것’을 이용해 이들을 구조할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동대표 박경근 씨는 “아파트 계단 폭이 좁아 이불로 A 씨를 끌어 온 뒤 겨우 들것에 태웠다는 얘기도 있다”며 “아파트 주민들 안전을 위해서라도 엘리베이터 운행 재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방대원들이 구급 활동 시 사용하는 들것의 폭은 1m 내외다. 아파트에는 폭이 약 1m 정도 되는 좁은 계단 14개가 다음 층까지 촘촘히 놓여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계단의 폭과 비슷한 들것을 들은 채로 골든타임이 지나기 전까지 계단을 올라야 하는 것이다.
기자가 이곳 1층부터 최고층인 15층까지 직접 걸어 올라오는데 10분 남짓 걸렸다. 오르자마자 가쁜 숨과 함께 허벅지 뒤쪽과 무릎 아래에 통증이 느껴졌다. 내려갈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상의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이런 탓에 배달 기사들도 이곳 주민들을 외면하고 있다. 김숙의 씨(68)는 “5㎏짜리 세탁세제가 떨어져 장 보고 오는 길인데, 배달을 시키니까 ‘거기는 안 가요’라는 대답뿐”이라고 했다.
손명자 씨(77) 역시 “집에 쌀이 떨어져 마트를 다녀와야 하는데 가장 작은 게 4㎏이더라”면서 “가뜩이나 무릎이 안 좋은데 13층 집까지 어떻게 쌀을 들고 와야 할지 가늠이 안 잡힌다”고 한숨을 보였다.
아파트 1층 공동현관 입구에는 12층까지 배달돼야 했을 김치 택배가 놓여 있었다. 이 택배를 담당한 기사 C 씨는 “이곳을 오르면 내 몸이 망가질 것 같아 어쩔 수 없다”며 쓴웃음을 보였다.
이 아파트를 담당하는 중구청에서는 각종 조처를 마련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2017년, 2021년, 2024년 세 차례 실시한 승강기 정밀안전 검사에서 ‘보완 공사 미비로 인한 불합격’ 판정이 나온 데 따른 행정안전부의 행정처분이라는 것이다.
중구 관계자는 “아파트 측이 선정한 업체가 조율을 통해 신속히 공사를 마쳐 한국승강기안전공단으로부터 재검사를 받아야만 한다”며 “구는 한국안전승강기공단과 행안부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측은 올해 연말 안으로 승강기 보수 공사를 마쳐 운행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아파트 관계자는 “행정처분 전까지 무사고로 운행하던 승강기를 강제로라도 다시 움직이고 싶지만, 법에 제한돼 어쩔 수 없다”며 “현재로서는 업체의 보수 공사만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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