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죽인 가해자 인생 생각해달란 경찰…억장 무너져” 교제 살인 유족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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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6월 18일 1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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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경남 거제시 백병원 대명아임레디 장례식장에서 교제폭력 피해자인 고(故) 이효정 씨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2024.5.25. 뉴스1
25일 경남 거제시 백병원 대명아임레디 장례식장에서 교제폭력 피해자인 고(故) 이효정 씨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2024.5.25. 뉴스1
전 남자친구의 폭행으로 숨진 이른바 ‘거제 데이트 폭력’ 사건 피해자 고(故) 이효정 씨의 유족이 “제2, 3의 효정이가 있어선 안 된다”며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청원을 올렸다.

자신을 ‘효정이 엄마’라고 밝힌 글 작성자는 1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교제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청원이 접수되기 위해서는 30일 이내 5만 명의 동의가 필요한데, 18일 현재 4만 5000여 명이 동의한 상태다.

이 씨의 어머니는 “행복한 일상이 4월 1일 아침 9시 스토킹 폭행을 당했다는 딸아이의 전화 한 통으로 무너졌다. 20대의 건장한 가해자는 술을 먹고 딸아이의 방으로 뛰어와 동의도 없이 문을 열고 무방비 상태로 자고 있던 딸아이 위에 올라타 잔혹하게 폭행을 가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응급실에 간 사이 가해자는 피해자 집에서 태평하게 잠을 자는가 하면 10일 딸 사망 후 11일 긴급체포에서 풀려나 13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다니며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 가서 더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나겠다’는 말을 하는 등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딸을 잃고 나서야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앞으로 어떻게 남은 자녀들을 키워나갈 것인지 몹시도 불안하고 겁이 난다. 사춘기 막내는 누나의 방을 보면 누나 생각이 나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가해자가 저희 집 주소도 알고 있고 가족들의 심신도 피폐해져 결국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진=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진=국회 국민동의청원


이 씨의 어머니는 “효정이는 경찰에 11회나 신고했지만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효정이는 가해자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가해자는 상해치사, 주거침입, 스토킹으로만 기소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번번이 쌍방폭행으로 처리해 가해자를 풀어줬고, 가해자는 더 의기양양해져 제 딸에게 ‘너 죽어도 내 잘못 아니래’라고 말했다. 경찰이 폭력을 방관하고 부추긴 거나 다름없다”며 “가해자가 구속될 때 경찰이 ‘가해자 인생도 생각해달라’고 훈계하는데 억장이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또 “사람을 죽여 놓고도 형량이 3년 이상의 징역밖에 안 돼 형을 살고 나와도 가해자는 20대”라며 제2, 3의 효정이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교제 폭력에 대한 수사 매뉴얼을 전면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이 씨의 어머니는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가족·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행·상해치사 범죄의 경우 살인죄와 비슷한 형량으로 가중해야 하고 가해자가 면식범인 경우 양형을 가중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이 씨의 어머니는 “국회에서 지금 당장 교제 폭력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교제 폭력 처벌법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호사를 꿈꾸던 20살 이효정 씨는 지난 4월 1일 자신의 주거지를 침입한 동갑내기 전 남자친구 A 씨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A 씨는 이 씨가 자신과 다툰 뒤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뇌출혈 등 전치 6주의 상해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열흘 만에 끝내 숨졌다. 경찰은 이 씨 사망 이후 A 씨를 상해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했으나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검찰의 결정으로 8시간여 만에 풀려났다.

당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B 씨의 사망이 폭행과 연관이 없다는 구두 소견을 냈다. 하지만 정밀검사를 통해 ‘원인 가능성이 높다’는 부검 결과가 나왔고 A 씨는 그제야 상해치사 및 스토킹, 주거침입 혐의로 구속 송치됐다.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
#거제#스토킹#살인#청원#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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