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합계출산율 1.0명.’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로 직접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본회의에서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밝힌 목표다. 이날 육아휴직급여 인상을 포함해 다양한 저출산 추가 대책이 발표됐다.
불가능하다곤 안 하겠다. 그러나 목표 달성이 쉽진 않을 것 같다. 합계출산율은 2017년 1.05명을 마지막으로 0명대로 추락했고, 이후 소폭조차 반등한 적이 없다. 그 사이 정부의 노력이 없었냐고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올해 출산율은 집계 이래 가장 낮은 0.6명대로 예측됐다. 내년부터 5년 내 출산율을 +0.4명가량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 ‘아이에게 미안해서…’ 청년들이 안 낳는 이유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근래 출산율 감소가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산 관련해 젊은 세대의 생각 자체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10여 년 전 기자가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결혼=출산’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반면 요새 젊은 기혼자들 가운데 선뜻 애 낳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 주변만 해도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거나 “배우자와 의견을 조율 중”이라는 이들이 대다수다.
주목할 점은 그 이유인데, ‘일이 바쁘다,’ ‘하고픈 게 많다’처럼 본인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자녀’에 초점을 맞춘 답이 많다는 점이다.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좋은 환경이 아니어서,’ ‘아이에게 미안해서’ 등. 처음에는 그저 하기 싫을 뿐이면서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하지만 몇 사람이 아니라 거의 모두 이렇게 답변하는 걸 보며 청년들 사이에 만연한 사고임을 알 수 있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완벽한 부모 신드롬’이라는 말로 이런 심리를 설명했다. 1982~1996년 밀레니얼 세대는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준비가 덜 되었거나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출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키우려는 마음이 커서 역설적으로 자녀를 키울 수 없게 되는 셈이었다. 실제 기자도 “잘 키우지 못할 바엔 낳지 않겠다”거나 “애 키울 능력이 없는데 애 낳는 건 죄” 식으로 말하는 청년들을 여럿 보았다.
● 기후위기·AI위협까지 걱정…육아 혜택으로 마음 돌리기엔 역부족
거시적이고 중장기적인 우려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었다. 두 딩크(DINK·Double Income and No Kids)족을 연달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기후변화, AI 확산 등을 언급하며 미래 세대가 처할 불확실성과 불안 때문에 출산을 포기했다”고 복붙(복사해 붙이기)처럼 이야기해 놀랐다. 이 역시 솔직히 처음엔 ‘진심일까?’란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후 젊은 무자녀 기혼자들을 인터뷰할 때도 종종 같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찾아보니 이미 서구에선 몇 년 전 ‘#No future, No children’ 같은 운동이 벌어졌을 정도로 제법 보편적 사고였다.
여전히 고개가 갸우뚱 기운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자녀를 잘 키우려면 안전한 사회와 깨끗한 환경이 필요하다. 그 범주에 집, 동네뿐 아니라 전 사회와 지구도 들어간다고. 내 아이가 자랄 사회와 지구의 미래가 비관적이라면? 열악한 환경에 처한 여느 생물과 마찬가지로 번식을 멈출 것이다.
이렇게 출산을 포기한 청년들이 육아기 지원이 좀 늘어난다고 출산을 결심할까? 내용 없는 ‘획기적 대책’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경천동지할 획기적 대책을 내지 않고선 마음을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19일 대책이 발표되고 난 뒤 결혼 3년차, 딩크족을 자처하는 지인에게도 물어보았다. 그의 답은 역시나 “육아 지원이 강화되는 건 좋은 일인데요, 저는 여전히 안 낳을 것 같아요”였다.
● 1.0명 돼도 여전히 꼴찌…인구 감소 문제 여전
정부도 다 생각한 게 있겠지, 출산율이 반등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다고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다. 워낙 0명대라는 수치가 주는 이미지가 강해서 우리는 늘 출산율만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실제 출생아 수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태어난 아기는 23만 명. 그 아기들의 부모가 태어난 1980~1990년대에는 한 해 출생아 수가 60~80만 명이었고, 또 그들의 부모가 태어났던 1950~1960년대에는 무려 100만 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비교도 안 되게 적은 숫자다.
출생아의 감소는 곧 미래 부모의 감소를 뜻한다. 1980년대 합계출산율 2명대 벽이 무너진 이래로 매년 출생아는 부모보다 적게 태어났다. 즉 저출산은 계속 누적되었고 이제부터 부모 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부모도 줄고 아이고 적게 태어나는, 이른바 저출산의 ‘더블링’이다. 부모가 100만 명일 땐 합계출산율이 0.6명이어도 출생아 수가 30만 명이지만, 부모가 60만 명이면 출산율이 1.0명으로 올라도 출생아 수는 똑같이 30만 명이다. 출산율이 오른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2030년 합계출산율 1.0명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인구 감소 속도를 조금 늦출 뿐 대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세계 꼴찌인 순위도 달라지지 않는다. 2021년 기준 우리에 뒤이은 합계출산율 최저 2, 3위 말타와 중국은 출산율이 각각 1.13명, 1.16명이었다. 1.0명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압도적 꼴찌에서 그냥 꼴찌가 되는 정도다.
● 극복뿐 아니라 ‘적응’을 논의해야 할 때
그렇다고 19일 발표가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1.0명을 크게 괘념치 말란 이야기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 모두 소중한 우리의 국민이기에, 이들을 양질의 환경에서 키울 수 있게 하는 육아 지원책은 여전히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일부에 한해선 출산유인책이 될 수도 있다. 다자녀 부모들끼리 하는 말이 있는데 “낳아본 사람이 더 낳는다”이다. 다자녀 부모 온라인커뮤니티에 가보면 자녀가 셋, 넷인데도 “하나 더 낳고 싶다”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출산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물론 한 명 낳고 더는 못 낳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만큼 하나 키워보니 예뻐서 둘째, 셋째를 생각하게 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렇듯 의지가 있는 가정엔 출산지원책이 추가 출산의 유인이 될 수 있다. 실제 한 지인은 둘째를 고민하던 중 부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휴직 기간과 급여를 늘려주는 혜택(6+6 부모육아휴직제도)을 접하고 둘째를 가졌다고 한다.
육아 가정의 상황이 나아지면 청년들의 육아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수 있다. 많은 청년이 “우리 언니가,” “회사 선배가” 아이를 힘들게 키우는 걸 보고 출산을 꺼리게 됐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조금 출산율이 개선된대도 대세에 큰 변화는 없기에, 이제 저출산 ‘적응’책도 적극 회자하길 바란다. 고령화, 생산성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추세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저서를 통해 지적했듯 고령, 여성 인력 활용을 높이고 산업별 재편성을 통해 그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앞으로 새로 출범할 부처에서 저출산 극복뿐 아니라 적응 문제 등 인구 문제를 다각적으로 논의할 수 있길 기원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