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당도 ‘고창 수박’… 지리적 표시제 등록 눈앞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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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브릭스 이상 수박만 판매하고… 4차례 검사로 균일한 품질 유지
저품질 수박에 스티커만 붙인… ‘짝퉁’ 고창 수박 등장에 몸살
최근 조건부 심사 합격 통보 받아… “고창 수박농가 648곳 숙원 해소”

전북 고창군 무장면의 한 수박 재배 비닐하우스에서 농민 박형남 씨가 출하를 앞둔 수박을 손으로 두드려 보며 선별하고 있다. 올 5월 말 기준 고창군에서는 834ha에서 648곳의 농가가 수박을 키우고 있다. 고창군 제공
전북 고창군 무장면의 한 수박 재배 비닐하우스에서 농민 박형남 씨가 출하를 앞둔 수박을 손으로 두드려 보며 선별하고 있다. 올 5월 말 기준 고창군에서는 834ha에서 648곳의 농가가 수박을 키우고 있다. 고창군 제공

20일 전북 고창군 무장면의 한 구릉. 낮은 산과 언덕 사이 밭에 ‘비닐하우스 바다’가 펼쳐져 있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자 황토와 초록 잎사귀 사이로 축구공보다 큰 수박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쪽에서는 수박을 손으로 두드리는 농부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수박을 두드리며 앞으로 나아가던 박형남 씨(64)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수박 한 통을 반으로 잘랐다. 새빨간 속살을 드러낸 수박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 코끝을 간지럽혔다. 하지만 박 씨는 이내 수박을 고랑에 던져버렸다.

당도가 초고당도로 분류되는 12브릭스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11브릭스였기 때문. 박 씨는 “12브릭스를 넘지 못하는 수박은 내놓을 수 없는 수박”이라고 했다. 46년 동안 수박 농사를 지으며 최고의 상품만을 시장에 내놓겠다는 자신과 지역 농민과의 약속을 지킨 것.

● 식품 기업도 인정한 최고 품질


23일 고창군에 따르면 고창 수박은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들어가기까지 4차례 품질 검사를 거친다. 1차로 수박을 일일이 두드려 보며 익은 정도를 살핀다. 수확한 뒤 옮겨진 수박은 표본 조사와 당도 정밀 조사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수박 내부 상태와 당도를 측정하는 비파괴검사를 통과해야 ‘고창 수박’이라는 스티커를 붙일 수 있다.

고창군과 수박 재배 농민의 이처럼 깐깐한 품질 관리는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동시에 국내 식품 기업의 여름철 대표 마케팅 재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2018년 고창 수박을 활용한 수박 블렌디드 음료를 출시해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았다. 해태제과는 고창 수박 시럽을 첨가한 여름 한정판 제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수박 빵과 수박 와인도 나왔다.

고창 수박에 붙은 명품이란 명성은 지리적 여건도 한몫했다. 전국 최대 수박 주산지인 고창은 통기성이 좋은 사질양토로 배수가 원활하다. 수박의 살을 찌우고 몸집을 키우는 비대기인 6∼7월 서해안 해풍 영향으로 10도 이상의 일교차가 나면서 질 좋은 수박을 키우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이런 이유로 5월 말 기준 고창군에서는 834ha(헥타르)에서 648곳의 농가가 수박을 키운다. 지역 특색 농업 발굴 소득화 사업을 통해 미생물을 활용한 저탄소·생물 농법 등 새로운 재배 기술 역량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

● 짝퉁 고창 수박 속출… 지리적 표시제 추진


고창 수박의 인기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면서 이 같은 명성에 편승하려는 꼼수도 속출하고 있다. 저품질 수박을 고창 수박으로 둔갑시키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

실제 2020년 8월 부산시 특별사법경찰과가 다른 지역 수박에 고창 수박 스티커를 부착해 판매하는 대형 청과상 3곳을 적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고창군과 농민이 추진한 것이 ‘지리적 표시제’다.

지리적 표시제는 ‘보성 녹차’처럼 농수산물이 특정 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원인을 두는 경우 그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특산품임을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지리적 표시 인증을 받으면 다른 곳에서 임의로 상표권을 이용할 수 없다.

고창 수박 재배 농민은 이를 위해 그동안 각각의 마을별 작목반으로 활동했던 농가 모임을 2020년 사단법인 고창수박연합회로 통합했다. 각기 다른 농가에서 재배한 수박이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명서도 만들었다.

고창군과 농민들의 이 같은 노력이 최근 결실을 봤다. 고창 수박의 지리적 표시제 인증과 관련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최근 조건부 심사 합격을 통보한 것. 고창군은 서류 보완 작업과 2개월간의 공고를 거치면 마침내 고창 수박의 원산지가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2004년 고창 복분자주, 2007년 고창 복분자에 이어 고창 수박이 지역의 세 번째 지리적 표시제 인증 상품이 된다.

김연호 고창수박연합회 대표는 “지리적 표시제 인증이 마무리돼 고창 수박의 프리미엄 가치가 높아져 지역 농가의 비결과 땀의 결실이 빛을 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수박 농가의 숙원이었던 지리적 표시제 등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며 “국가대표 명품 수박의 브랜드를 지켜갈 수 있도록 품질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초고당도#고창#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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