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심 줄잇는 폐교… 탈북학생 배움터 탈바꿈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4일 03시 00분


[폐교 쓰나미, 살길 찾는 학교들]
염강초 폐교후 ‘여명학교’로 거듭나… “학교 다니며 한국 사회 적응 도움”
덕수고 등 올해만 서울서 3곳 폐교
부지 활용 규제에 고밀개발 힘들어… “용적률 등 완화 효율적 활용 필요”

학생 수 감소로 2020년 폐교한 서울 강서구 염강초의 시설은 지난해 2학기부터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의 교육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교문에 염강초 폐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학생 수 감소로 2020년 폐교한 서울 강서구 염강초의 시설은 지난해 2학기부터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의 교육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교문에 염강초 폐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10일 낮 12시 서울 강서구 가양동.

학교 건물에선 아이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식사를 마친 학생 일부는 탁구를 쳤고 일부는 운동장 옆 텃밭에 물을 줬다. 오후에는 반마다 학생 7∼10명씩 모여 음악, 태권도, 국어, 영어 등의 수업을 들었다. 국내 여느 학교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디서든 한국어와 중국어가 함께 들린다는 정도였다.

이곳은 염강초등학교가 있다가 2020년 3월 폐교된 장소다. 이후 한동안 버려졌다가 지난해 2학기부터 북한이탈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로 거듭났다. 폐교가 다른 형태의 교육시설로 재탄생한 것이다.

● 문 닫은 초교가 탈북학생 교육의 장으로

10일 찾은 서울 강서구 여명학교에선 국어, 영어, 태권도 등 다양한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학생들은 탈북 청소년 또는 탈북민
 가정 청소년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10일 찾은 서울 강서구 여명학교에선 국어, 영어, 태권도 등 다양한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학생들은 탈북 청소년 또는 탈북민 가정 청소년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여명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모두 95명으로 중학생 25명, 고등학생 70명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북한의 국경 봉쇄와 주민 통제가 심해지며 한국으로 곧장 탈북하는 사람은 연간 100명 이하로 줄었다”며 “학생 대부분은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낳은 뒤 한국으로 함께 들어온 아이들이라 중국어와 한국어를 함께 쓴다”고 했다.

여명학교는 원래 서울 중구에 있었는데 2019년 건물 임대 계약이 만료되면서 은평구 은평뉴타운으로 이전하려 했다. 그런데 이전 예정지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유일하게 인가된 북한이탈청소년 대안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염강초 시설을 임대해주기로 했다.

여명학교는 염강초 부지로 옮기면서 과거에 없던 운동장도 생겼다. 여명학교 7회 졸업생으로 현재 이 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일하는 이심일 씨(40)는 “아이들에게 뛰어놀 공간이 생긴 것이 무엇보다 좋다”고 말했다. 태권도 수업을 받던 김희진 양(17)은 “지난해 고1 때부터 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고 한국 사회 적응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서울에서도 줄 잇는 폐교

저출산 심화로 학령인구가 빠르게 줄면서 서울 시내에서도 폐교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는 광진구 화양초교가 폐교됐고 올해는 덕수고 도봉고 성수공고가 문을 닫았다.

서울의 경우 도심 공동화 등으로 지역별 학령인구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폐교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염강초의 경우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민 자녀가 많이 다녔는데 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학생 수가 급감했다. 입주 후 장기간 거주하는 영구임대아파트의 특성상 초등학생 전입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경우 지방보다 땅값이 비싸다 보니 활용까지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규정상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하는데 서울은 대부분의 학교 부지가 500억 원을 넘는다. 이에 따라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진행하는 것에만 2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또 서울의 경우 10년간 용적률(땅 면적 대비 건물 바닥 면적을 합한 면적의 비율)과 건폐율(토지 면적 대비 건물 바닥 면적의 비율)을 제한하고 있다. 학교 특성상 교통 접근성이 좋아 다양한 활용 방안이 검토되지만 현실화가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용적률과 건폐율을 제한하다 보면 복합 기능을 갖춘 개발이나 고밀도 개발을 못 하게 된다”며 “개발 제한을 과감하게 풀고 효율적 활용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 3분기(7∼9월) 중 폐교 부지 활용 방안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폐교를 생태교육 시설로 전환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다양한 용도로 폐교 부지를 활용하고 싶다는 요구가 들어오고 있다. 교육청 차원에서 부지 활용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폐교#여명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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