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가족 품으로’ …구슬땀 이어가는 유해발굴감식단[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5일 13시 53분


6.25 전쟁 74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준하 상병이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돌봉산 150고지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가 발굴될 것을 대비해 태극기로 오동나무 관을 감싸는 관포의식을 연습하고 있다. 의식을 행하는 장병들은 관에 얼굴을 가까이 붙여 틀어진 부분과 주름진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5월 13일부터 이 지역 일대에서 발굴 작전을 이어가고 있다. 파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자, 이제 다시 작업 시작해 보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의 돌봉산 150고지. 힘찬 구령이 울려 퍼지자 군 장병들은 지체 없이 다시 삽을 손에 쥐었다. 이들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9사단 장병들. 감식단과 지원 병력은 지난 5월 13일부터 파주시 일대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작전을 이어오고 있다. 6.25 전쟁 74주년을 하루 앞둔 24일에도 이들의 작전은 멈추지 않았다.

험준한 산지를 20여 분간 오르자, 가파른 경사에서 땀 흘리는 장병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중심을 잡고 서 있기도 힘든 30도가 넘는 경사에서 장병들은 묵묵히 흙을 파내 유해와 유품을 찾고 있었다. 흰색 표식으로 둘러싸인 수십미터 반경의 작전 지역은 발굴이 거의 완료된 막바지 단계에 이른 모습이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왼쪽 검은 복장)과 9사단 장병들이 돌봉산 150고지에서 유해 발굴 작전을 펼치고 있다. 파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9사단 장병들이 유해 발굴 작전 지역에서 흙을 퍼내고 있다. 파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9사단 장병들이 유해 발굴 작전 지역에서 흙을 퍼내고 있다. 파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발굴 작전이 진행된 돌봉산 150고지는 지난 1951년 중공군의 4월 공세(5차 공세 델타방어선 전투)가 치러진 격전지였다. 3일간 치러진 전투에서 국군 1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 중공군 1개 병단 소속 병력을 상대로 진지를 사수했다. 이 일대에서 국군은 154명이 전사했고 북한군과 중공군은 8117명이 사망했다.

발굴 작전이 속도가 붙자 검은 복장의 유해발굴감식단 장병들도 바빠졌다. 파헤쳐진 흙더미 사이를 유심히 살피며 유해와 유품을 찾는 이들의 눈도 동시에 빠르게 움직였다. 녹슨 모신나강 소총의 탄두와 탄피를 발견하자 유해발굴기록병은 이내 흰 천을 펴고 기록과 정리를 시작했다.

유해발굴기록병 이준하 상병이 이날 현장에서 발견된 모신나강 소총 탄두와 탄피를 정리하고 있다. 파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이날 현장에서 발견된 모신나강 소총 탄두와 탄피. 파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유해발굴감식단 오승래 발굴팀장이 유품을 정리하고 있다. 왼쪽 파란색으로 표시된 유품은 국군, 오른쪽 붉은색은 북한군과 중공군의 유품. 파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오후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자 장병들은 국군 전사자 유해가 발굴될 것을 대비해 태극기를 관에 씌우는 ‘관포의식’ 연습을 진행했다. 발굴 작전 지역 앞에는 언제든지 관포의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대형 태극기가 매달려 있었다. 태극기 아래 장병들이 도열하자 두 명의 유해발굴기록병이 전사자의 유해를 담는 오동나무 관을 들고 관포의식을 시작했다.

장병들이 경례를 올리자 두 기록병은 조심스럽게 관을 태극기로 감쌌다. 관 위에 얼굴을 맞댄 기록병 이준하 상병의 눈길은 태극기 가장자리에 고정됐다. 틀어진 부분과 주름진 곳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을 마친 기록병들은 이내 의식을 끝마쳤다.

유해발굴감식단 장병들이 전사자 유해가 담기는 오동나무 관에 태극기를 감싼 뒤 얼굴을 가까이 붙여 틀어진 부분과 주름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파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유해발굴감식단과 9사단 장병들이 관포의식 연습하며 경례하고 있다. 파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돌봉산 150고지의 발굴 작전은 28일까지 이어진다. 현장의 발굴팀장에 따르면 작전은 애초 4주 동안 진행돼 지난 7일 끝날 예정이었지만, 유해가 나오지 않아 군 당국은 작전을 3주 연장했다. 기간이 연장됨에 따라 100여 명이 참여했던 작전의 규모도 20여 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현장의 장병들에게서 힘든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작전을 마치고 철수하는 길에 발굴팀장은 “작전이 연장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만큼 우리 군이 유해 발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9사단 장병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발굴 작전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파주=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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