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꺼리는 위험 업무, 외국인 근로자들이 떠맡아… 참사 또 벌어질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5일 2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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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관 변호사 인터뷰

“또 다른 일터에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수 있다.”

경기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 화재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25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만난 비영리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의 센터장 조영관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 이주 노동자에 대한 법률상담과 소송 지원 등을 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지금도 다른 노동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산업재해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더 큰 참사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5일 만난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더 큰 참사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화성 참사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중국인 등 외국인으로 확인되자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변호사는 본보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가장 많은 외국인이 숨진 단일 산업재해 사건”이라며 안전 대책이 미비했음을 지적했다.

―이번 참사를 어떻게 보나.
“이번 사건은 단일한 사건 중 가장 많은 외국인이 숨진 산업재해다. 아직 고용형태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희생자들은 원청 업체에서 직접 고용하지 않은 불법 파견 근로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 가운데 근로자들에게 공장 내 구조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 등, 안전교육이 부실한 까닭에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기본적인 안전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향후 더 큰 참사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와 관련해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25일 공개 사과문에서 “불법 파견은 없었다”며 “안전 교육도 충분히 했다”고 말했다. 또 “업무 지시는 파견 업체에서 했다”고 해명했다. 반면 아리셀에 외국인 근로자를 공급한 인력파견업체 메이셀은 인력만 보냈을 뿐 근로자 교육이나 작업 지시는 아리셀이 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는 “불법 파견에 대한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외국인 근로자에게 산업재해가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나.
“비일비재하다. 4월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가 폐기물 처리 공장에서 기계를 청소하던 중, 관리자가 기계를 작동해서 사망한 사건을 내가 맡고 있다. 사람의 유무를 확인하지 않고 기계 작동 버튼을 눌러서 근로자가 사망한 것이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몽골 국적 근로자가 고용허가제 비자를 받고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철근을 묶고 있던 와이어가 터져서 철근에 깔려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이 업무를 2인 이상이 하도록 규정돼있으나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24일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1차전지 제조 업체인 아리셀 공장. 뉴스1

―외국인 노동자들은 왜 산업재해에 더 취약한가.

“첫 번째는 언어문제다. 외국인 근로자 상당수는 한국어를 구사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안전과 관련된 정보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적절하게 제공되지 못하니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비상구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면서 사고시 비상구를 제대로 찾지 못하지 않았나. 두 번째로는 내국인들이 위험한 업무를 꺼리면서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작업을 외국인이 맡게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정부나 지자체의 대응은 어떠했나.

“정부는 일반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산업재해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했다. 이번 사건 이후 경기도에서 외국인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 방침을 밝혔는데, 대부분 다른 사고들에서는 개인이 전부 비용을 부담한다. 또 외국인 근로자들은 내국인 근로자들과 배상 기준이 다르다. 외국인은 통상적으로 비자 받은 날로부터 최대 3년까지 한국에서 벌 수 있는 소득으로 계산하고, 나머지 65세까지는 본국의 현지 급여를 기준으로 미래에 벌 수 있는 수입을 산정한다. 몽골의 경우 한 달 평균 임금이 16만 원 정도로,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이다. 똑같은 사람이 죽어도 사업주가 배상해야 하는 금액이 한국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셈이다.”

―사고 때 기업들의 대응은 어떠했나.

“보상을 해줄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이 없는 영세한 사업장들이 너무 많다. 그런 사업장에서는 사고가 났을 때 제도적으로 많은 보상을 약속한다 해도 실질적으로 보상을 못 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 원청에서 직접 고용하는 게 아니라면 보상 책임의 소지가 모호해진다. 인력 소개 업체 소속 외국인들이라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국내 외국인 근로자는 점차 늘어나는데.

“과거보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성격이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터로 유입됐다. 이들은 오로지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기 위한 비자를 받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지면서 노동 이외 다른 목적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재외동포나 결혼이민자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맞벌이를 하고 싶은 마음에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외국인 근로자 정책의 문제는 무엇인가.

“변화한 노동시장 속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관리나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양한 비자의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유입되면서 같은 노동자 사이에서도 급여조건 차이가 많이 나기 시작했다. 사회가 여기에 대한 제도나 대안을 만들지 못하는 상태다. 법무부와 고용노동부도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용부에서 외국인 산업재해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긴 하나,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노동자들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 사건처럼 고용허가제 외 비자를 받고 입국한 근로자들에 대한 근로감독 등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부가 모르는 것이다.”

―정부는 돌봄,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더 많이 들여오려 한다.

“모든 문제를 외국인 도입으로 해결하려 하는 정책적인 기조가 엿보인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외국인 노동력이 비용적인 측면에서 저렴하다는 생각이 전제돼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국내에 정책적으로 유입된 후에는 경제적 비용 외에도 사업장 내 안전 조치를 다국어로 진행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외국인을 도입하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주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이나 지원은.

“한국인 근로자들이 꺼리는 위험한 업무에 외국인 인력을 쓸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이들에게는 산업안전 관련 매뉴얼 등 조치를 마련하거나, 교육 이수 조건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교육 이외에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험 요인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작업중지권 등 노동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들의 안전을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게 하는 필요한 장치들도 함께 고려해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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