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리튬전지 공장 참사]
각국 리튬전지 위험관리 어떻게
美 “ESS 설치, 소방 사다리 닿는곳에”
韓, 지하 9m에도 허용 위험성 간과
日, 스프링클러 설치 수준 실증실험도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 지침부터 화재 발생 시 진압 방식까지 상세한 표준을 마련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학적 특성상 언제라도 폭발이 발생해 대형 화재로 번지는 게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어떻게 관리할지 매뉴얼도 없다. 화학물질 사고를 막겠다며 2010년대 화학물질관리법 등 도입에 앞장섰던 정치권은 가습기 살균제에만 초점을 맞췄다. 정작 주요국이 주목했던 리튬이온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관리 매뉴얼이 없다 보니 관련 시설에 대한 규정이나 소화 설비도 허술할 수밖에 없다.
● ESS 설치 지침 두고 규정 정비하는 美
미국은 201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리튬배터리 공장의 화재 위험에 대해 규제를 계속해서 강화하는 추세다. 규제를 만드는 주축은 민간 단체다. 산업계와 소방 관련 연구기관 등을 회원사로 둔 미국화재예방협회(NFPA)는 크고 작은 리튬 관련 화재를 연구해 2020년 처음으로 ESS 설치 지침인 ‘855’ 규정을 만든 뒤 지난해 업데이트했다. 전 세계 화재 사례를 연구해 상황별 지침을 지속적으로 재정비하는 것이다.
이 지침은 미 정부 규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화재 시 보험 지급 기준이 돼 미국에선 산업계 표준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2023년 개정판은 그간 발생한 배터리 화재에서 얻은 교훈을 반영하면서 분량이 전년의 두 배가량인 총 123쪽으로 늘었다. 24일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처럼 배터리 화재 사고가 폭발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규정 등을 담은 별도의 ‘안전 관리 가이드’도 반영됐다.
이를 보면 2019년 미 애리조나주 ESS 화재로 소방관 4명이 부상당했던 사례를 들며 “ESS에서 열 관리와 화재 진압을 동시에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겉보기엔 불꽃이 없어도 소방관이 열을 진압하려고 문을 열면 외부 산소가 공급돼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전기저장시설의 화재안전기준(NFPC 607)’ 등에서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용어 설명이나 장치 마련 기준을 제시할 뿐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한 소방관은 “미국은 ESS 설치를 소방차 사다리가 닿을 수 있는 곳에 해야 하는데, 한국은 지하 9m에도 설치할 수 있게 돼 있다”고 말했다.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배터리 화재는 다른 배터리로 불이 옮겨붙거나 뜨거운 연기 등에 의해 2차 폭발이 발생하는 것이 큰 문제다. 이에 미국은 NFPA 855에서 2차 폭발을 막는 장치나 시스템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관련 규정이 없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외국의 선진 화재 예방 설비를 설치하고 싶어도 관련 규정이 없어서 허가가 안 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해 1월 개정된 소방법 시행령에 따라 실내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저장하거나 다룰 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또 창고 등에 저장하는 충전지는 60% 미만으로 충전하고 물이 스며드는 재질로 포장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 소방청은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 및 창고용 스프링클러로 어느 정도가 적합한지 실증실험도 진행 중이다.
● 외신 “업계 오래 고심해온 까다로운 화재”
외신은 이번 화성 화재를 ‘배터리 보편화로 세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까다로운 화재’로 조명하며 대비책을 갖출 것을 경고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튬 화재는 오랫동안 업계에서 고심한 문제로, 결국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점차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권 방송 유로뉴스는 “한국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리튬전지 수출 선두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라면서 “이번 사고로 리튬전지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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