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에 맞서는 청년들의 이야기-7회
홍천 청년마을 ‘와썹타운’에 거주하는 한승재 방앗간막국수 사장 등
인구감소지역인 강원도 홍천에 막국수 식당을 차린 20대 청년들이 있다. 서석면 풍암2리에 조성된 청년마을 ‘와썹타운’에서 살고 있는 한승재 씨(29)와 김국호 씨(28)다. 특히 창업을 주도한 한 씨는 한정식 전문점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대학교 선배 김성훈 씨(32)와 함께 인천에서 시작한 배달 전문점이 11호점까지 확장하면서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 하지만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저희가 요식업을 한 3년 동안 했어요. 처음엔 반응이 엄청 좋았어요. 근데 점주들과 문제가 조금씩 생기는데 사업을 처음 하니까 잘 잡지 못했죠. 그리고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결국 다 정리하게 됐어요.”
장사를 접게 된 한 씨와 선배 김 씨는 무작정 강원도 춘천에 숙소를 잡았다. 고향이 경인지역인 두 사람은 2021년 11월 춘천에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 끝에 소셜링 기업 ‘업타운’을 차렸다. 이어 춘천을 기반으로 홍천, 강릉, 양평 등 지역에서 각각 콘셉트가 다른 ‘타운(게스트하우스)’을 세웠다.
그러던 중 이들은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지원 사업을 알게 됐다. 청년들의 지역 정착 및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기 위한 청년마을 지원 사업이 자신들의 사업성과 유사하다고 생각해 기획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한 씨는 청년마을의 주민, 선배 김 씨는 청년마을의 대표가 됐다.
한 씨와 김 씨가 청년마을로 선택한 곳은 ‘컨츄리타운’이라는 이름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던 홍천이다. 사실 두 사람과 홍천의 인연은 2016년부터 시작한다. 당시 대학생이던 이들은 이곳에서 농촌활동(농활)을 한 경험이 있다. 지금 청년마을이 자리 잡은 풍암2리가 농활 마을이기도 하다.
한 씨가 따로 막국수 식당을 차리게 된 것도 청년마을 지원 사업이 계기가 됐다. 마을에 정착하려는 청년들의 개인 사업을 마케팅이나 브랜딩 차원에서 돕겠다는 취지로 기획서에 써낸 ‘핫플레이스 조성 프로그램’이 도움을 준 것이다.
“청년마을 1년차에는 관계 인구를 만드는 단계였어요. 청년들이 와서 저희 마을을 좋아해주면서 관계 인구가 형성되는 거죠. 그 다음에는 정착 인구를 만들려고 했어요. 제가 어떻게 보면 첫 번째 시도자이기도 해요. 비용 지원이 있어야만 남아 있으면 그건 청년마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업타운이 청년에게 기회를 계속 주면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한 씨는 호텔 셰프 출신인 김국호 씨를 영입해 함께 식당을 차렸다. 중국집이 있던 낡은 공간에 직접 새 옷을 입히면서 ‘홍천의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모색한다’는 의미를 담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공간을 만들었다. 선택한 메인 메뉴는 막국수. 한 씨가 한정식 전문점에서 일하면서 주력으로 삼았던 메뉴다. 주재료인 메밀이 풍부하다는 점도 메뉴 선택의 이유가 됐다. 풍암2리 마을의 주민들은 약 20만 평 규모의 메밀밭에서 메밀을 수확하고 있으며, 청년 후계농인 한 씨도 약 6만 평의 메밀밭을 가꾸고 있다. 100% 순메밀 막국수를 제공하고 모든 식탁에 당일 아침에 뽑은 메밀떡을 반찬으로 제공하면서도 재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한 씨는 마을 주민들에게 도움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48개월 미만 어린이들에겐 무료로 막국수를 제공하기로 했다. 인구감소지역인 홍천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과 그 부모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다. 막국수를 다 먹으면 확인할 수 있는 그릇 바닥면을 통해 ‘막국수 한 달 무료’ ‘반값 할인’ 등 재밌는 이벤트를 내 건 것도 마찬가지다.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한지 3주차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 씨의 막국수 식당은 벌써 지역에서 유명하다. 지난 6월 25일 홍천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기자가 택시를 타고 ‘방앗간막국수’를 목적지로 얘기하자 내비게이션도 없이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할 정도였다.
“점심시간에는 평일에도 줄을 서있을 정도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셔요. 군인들이나 근처에서 일하는 분들이 오다보니까. 며칠 전에는 대기 번호가 18번까지 있었어요. 주말에는 훨씬 더 많아요. 첫 주에는 젓가락이 부족할 정도였어요.”
식당 사장이면서 농부이기도 한 한 씨는 6차 산업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메밀 재배부터 밀키트 등 제품 개발, 농가 체험까지 농업의 종합산업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제가 청년 후계농에 선정되면서 논밭이나 땅을 사기 위한 융자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땅을 매입해서 내년 초에는 공장을 세우고 싶어요. 막국수 집이 생각보다 잘되어서 프랜차이즈 제안도 4건 정도 들어왔어요. 홍천을 기반으로 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확장시키고 공장에서 프랜차이즈용 소스나 밀키트를 생산하는 걸 계획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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