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값 깎고 사치 안 하는 부자, 이유는 ‘네오포비아’

  • 주간동아
  • 입력 2024년 6월 30일 12시 42분


[돈의 심리] 기존에 익숙한 것만 계속하려는 성향… 스티브 잡스 블랙 티셔츠 고집한 이유

새로운 것을 꺼리는 네오포비아 성향의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도 
검소하게 산다. [GettyImages]
새로운 것을 꺼리는 네오포비아 성향의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도 검소하게 산다. [GettyImages]
나는 옷을 잘 못 입는다. 보통은 여행 다니면서 사온 기념품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어떤 게 좋은 옷이고 안 좋은 옷인지,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뭔지, 색깔을 맞춰 옷을 입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른다.

“이젠 패션에도 신경 좀 쓰지 그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몇 번 만난 사람들은 나의 이런 패션에 대해 “돈이 있으면서도 검소하게 사는” “쓸데없는 곳에 돈을 안 쓰는” “돈이 있다고 사치하지 않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런 평가를 들으면 좀 이상하다. 내가 돈을 아껴서, 사치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입고 다니나? 분명히 말해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돈이 있어도 쓸데없이 돈을 쓰지 않고 검소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러고 보니 겸손한 부자는 허름하게 입고 다니고, 고급 외제차가 아닌 지하철을 주로 타고 다니며, 시장에서 몇백 원이라도 깎으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좋은 부자는 부자가 됐다고 사치하지 않고 이전 소비 패턴에 큰 변화가 없다고도 한다. 물론 그런 부자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그 부자가 정말 검소하고 사치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어째 아닌 것 같다.

부자가 된 후에도 부자가 아니었을 때의 생활 패턴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생활 패턴일까. 부자가 아니었을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같은 음식들만 먹고, 또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은 취미 생활을 한다면 부자가 됐다고 해서 사치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부자가 되기 전이나 후나 동일한 생활 패턴을 가졌으니 일관성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해야 할까.

검소하게 생활하는 부자들

부자가 아니던 사람이 부자가 됐다면 분명 살고 있는 여건이나 환경이 바뀐 것이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고, 따라서 그렇게 주변 환경이 바뀌면 본인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바뀌지 않는다. 이런 일관성은 좋은 것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부자가 됐음에도 이전과 똑같은 소비 패턴을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건 그 사람이 부자이기는 하지만 ‘네오포비아’ 성향을 가졌기 때문일 수 있다. 심리학에는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대한 것으로 네오필리아(Neophilia)와 네오포비아(Neophobia)라는 개념이 있다. 네오필리아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긍정적 성향이고, 네오포비아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부정적 성향이다. 네오포비아적인 사람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고, 변화도 바라지 않는다. 그냥 기존에 익숙한 것만 계속하려 한다. 자기가 살던 곳에서 계속 살려 하고, 자기가 먹던 것만 먹으려 하며, 자기가 입던 옷만 계속 입으려 한다. 내가 보기에 부자가 된 후에도 소비 패턴이 변하지 않은 부자는 대부분 검소하게 살려고 해서가 아니라 네오포비아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부자 가운데 네오포비아 성향을 지닌 이들이 있다는 데 대해 의문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부자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시도하는 사람 아닌가. 아니다. 부자 중에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부자가 된 사람도 있지만, 오래전 자신이 발견한 돈 버는 원리를 바꾸지 않고 계속 반복하기만 해서 부자가 된 사람도 많다. 또 돈을 버는 데는 네오필리아 성향을 보이지만, 그 외에는 네오포비아 성향일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제품을 계속 만들어낸 대표적 혁신가였으나 옷은 똑같은 청바지와 블랙 티셔츠만 입었다. 옷에 대해서는 네오포비아였다. 자기가 관심 있는 부분, 돈을 버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만, 돈 버는 것과 상관없는 생활 관련 부분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원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생활비 부족한 부자도 있어

생활 패턴은 그렇다 치고, 부자가 시장에서 먹거리를 사면서 몇백 원을 깎아달라고 하는 건 왜 그럴까. 여유가 없어서 생활비를 몇천 원이라도 아껴야 하는 사람은 깎아달라고 할 수 있고 또 그게 당연하다. 이게 대다수 사람이 물건값을 깎아달라고 하는 이유다. 하지만 부자는 돈 몇백 원, 몇천 원 여유가 없어서 깎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부자가 이런 데서 비싸다고 불평하며 물건값을 깎아달라고 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집은 부자인데 자기는 돈이 없는 경우다. 배우자가 돈을 많이 벌고 집 재산도 많다. 하지만 배우자가 자기에게 돈을 많이 주지 않는다. 생활비 200만~300만 원만 준다. 그러면 자기는 이 돈으로 살림을 해야 한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가전제품을 사거나 명품 가방을 사거나 할 때는 따로 돈을 주기 때문에 이런 건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소 생활비는 많이 주지 않는다. 그러면 이 사람은 생활비를 아끼면서 돈을 써야 한다. 부자라고는 해도 보통 사람과 생활은 똑같다. 시장에서 물건값을 깎아야 한다. 의외로 이런 사람이 많다. 한국에서 유명한 재벌가의 자식인데, 부모가 용돈을 거의 주지 않는다. 그럼 이 사람은 재벌가의 후계자라 해도 어디 가서든 1000원, 1만 원을 아끼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부자이면서도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게 아니다. 집이 부자이기는 하지만 자신은 돈이 없고, 그래서 검소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물건 파는 사람이 부당하게 비싼 가격을 부른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이 물건의 가격을 잘 아는데, 상대방이 그것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른다. 전에는 1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1만5000원을 달라고 한다. 돈 5000원이 문제가 아니다. 상대방이 바가지를 씌우려는 게 문제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나를 등쳐먹으려 하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인테리어 등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200만 원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 250만 원을 달라고 한다. 적정 가격이라는 게 있는데, 이보다 높은 가격을 부른다. 그러면 그 돈을 다 줄 수 없다. 깎아야 한다. “비싸요. 200만 원으로 하시죠”라며 가격 협상을 시도한다. 이 경우 큰 부자인데도 50만 원을 절약하기 위해 가격을 깎으려 하는 검소한 부자라고 봐서는 안 된다. 부자든, 아니든 상대방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으려는, 바가지를 쓰는 호구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일 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이유로 이뤄지는 협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상대방이 나를 속이거나 부당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발상을 전제로 한다. 상인이 제값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이런 가격 협상은 없다. 제값이 아니라 높은 가격을 부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격을 깎으려 하는 것이다. 원래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부르는 상인도 문제고, 미리부터 이 상인이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도 문제다. 사회와 인간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물건값 깎는 것을 돈을 아끼려 한다는 긍정적 현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가격 흥정을 게임으로 생각하기도

셋째, 물건값 깎는 것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경우다. 돈을 아끼는 게 목적이 아니라, 매매 과정에서 가격 협상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상인이 물건값을 “1만 원이에요”라고 할 때 1만 원을 다 주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1만 원을 부르면 “1000원 깎아주세요” “좀 깎아주세요” 등의 말이 당연히 나온다. 가격 협상은 거래할 때 당연히 하는 일이다. 상인은 상대방이 그렇게 깎아달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원래 8000원짜리인데 1만 원을 부른다. 1만 원을 부르고 상대방이 깎아달라고 하면 그 요구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8000원을 받는다. 상대방이 깎아달라고 하지 않고 그냥 내려고 하면 “특별히 깎아줄게요”라며 8000원만 받기도 한다. 이 경우 가격 흥정은 일종의 게임이고 레저다. 서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누가 흥정을 더 잘하는가 하는 엔터테인먼트다. 이 경우 부자가 1000원, 2000원을 아끼려 노력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 부자들은 이런 행동을 돈을 아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재미로 하는 것이다.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는 부자, 1000원을 깎으려고 애쓰는 부자, 나는 그런 부자가 좋은 부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 같지 않다. 부자는 됐지만 변하지 않는 사람,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 잘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 돈을 쌓는 게 목적인 사람이 그렇게 돈 안 쓰는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내 시각에서는 그런 부자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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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46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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