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발발이 이사를”vs“폭탄 떠넘겨”… 성범죄자 거주지 놓고 이웃간 갈등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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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관리인 “2년간 월세 대납”
朴에게 30m옆 오피스텔 이사 제안
“절대 못받아” 해당 건물주민 반발
정부는 주소지 공개만 해놓고 손 놔

박병화의 거주지로 알려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오피스텔 주변에 경찰 병력이 순찰을 돌고 있다. 2024.5.16 뉴스1
박병화의 거주지로 알려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오피스텔 주변에 경찰 병력이 순찰을 돌고 있다. 2024.5.16 뉴스1

“‘폭탄 떠넘기기’ 아닌가요. 옆 건물에 사는 것만으로도 싫었는데 여기로 이사를 보낸다니요. 제가 이사를 가야 할까요.”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A오피스텔 주민 김모 씨(29)는 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원 발발이’로 알려진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40)가 A오피스텔로 이사를 올 수도 있다는 소식 때문이다. 반면 박병화가 한 달째 살고 있는 이 동네 B오피스텔의 주민들은 그를 A오피스텔로 이사 보내려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불과 30여 m 떨어진 두 오피스텔 주민이 박병화의 이사 문제로 최근 갈등을 빚고 있다.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제도 도입 이후 이들이 사는 거주지 주변 주민들은 비슷한 갈등을 겪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박병화 이사 보내자” vs “절대 받을 수 없다”

B오피스텔 소유자들의 대표 겸 건물관리인 김모 씨(54)는 “내가 A오피스텔에도 한 채를 소유하고 있는데, 박병화를 그곳으로 이사보내자”고 B오피스텔 입주민들에게 제안했다. 입주민들이 찬성하자 김 씨는 지난달 23일 ‘박병화 전입 관련 통지문’이라는 제목의 내용 증명을 A오피스텔 소유주 대표 겸 건물관리인 지모 씨(68)에게 보냈다.

통지문 요지는 ‘박병화를 A오피스텔에 있는 김 씨 소유의 방으로 전입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1일까지 답장이 없으면 박병화가 앞으로 4년간 A오피스텔에 사는 데 이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법적으로는 김 씨가 자기 소유의 방을 박병화에게 월세 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사인 간의 부동산 계약에 해당한다. A오피스텔 대표나 입주민들이 이 계약을 거절하거나 반대할 법적 권리는 없다.

김 씨의 통지문은 “B오피스텔은 주거용 건물이라 여성 입주자들이 박병화의 존재를 불안해한다. 반면 A오피스텔은 사무실 위주라 박병화가 이사를 와도 주민들의 불안 문제가 적다”는 취지였다. 김 씨는 박병화에게 이사를 가면 향후 2년간 월세를 대신 내주고, 4년간 A오피스텔에 살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제안했다. 박병화는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오피스텔 주민들은 반발했다. A오피스텔 주민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는 “우리도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절대 반대합니다!” 등의 글이 계속 올라왔다. 반면 B오피스텔 주민들은 환영했다. B오피스텔 주민 이모 씨(21)는 “박병화가 이 건물에서 나갈 수 있다니 다행”이라고 했다.

● 성범죄자 거주지 공개만 해놓고 손 놓은 정부

정부는 성(性)범죄자가 사는 주소지를 공개하면서, 이로 인해 벌어질 갈등과 주민들의 불안에는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호 감호 확대와 같은 적극적인 조치들을 고려하는 등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갈등은 악질 성범죄자들이 출소할 때마다 반복됐다. 초등생을 성폭행해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2020년 12월 출소한 조두순(72)은 집을 월세 계약했다가 신원이 드러나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계약이 파기됐다. 2022년에는 미성년자 12명을 성폭행한 김근식(56)이 출소해 경기 의정부시로 이사를 가려 하자 의정부시장과 주민들이 반발했다.

일부 국가는 성범죄자 주거지를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2005년 ‘제시카법’을 제정해 아동 대상 성범죄자는 출소 이후 학교 등 아동이 많은 곳으로부터 약 610m 이내에 거주하지 못하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한국형 제시카법’ 논의가 있었지만 법제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아직 발의된 법안이 없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제시카법이 도입되더라도 형기를 마친 사람을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시킬 수는 없다”며 “보안처분 등 재범 방지를 위한 정부 예산과 인력을 늘리고 지속적 교육을 통해 교화와 감시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주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수원=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수원발발이#박병화#성범죄자#거주지#이웃#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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