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들고 구청 가고 있다” “염산 뿌릴 것”… ‘공무원 협박’ 악성 민원인 전국 2784명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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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공기관 절반, 대응교육 안해”


“지금 칼 들고 구청으로 찾아가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A 씨는 2018년 민원인으로부터 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과거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한 적이 있는 민원인이었다. “아동학대 신고로 멀쩡한 내 가정이 파괴됐다”며 구청 직원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민원을 넣었던 이 민원인이 급기야 A 씨에 대한 살해 협박까지 한 것. 결국 A 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법원은 민원인에게 A 씨에 대한 접근 금지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악성 민원인들이 3월 기준 전국적으로 278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민권익위원회가 2일 밝혔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공무원들이 극단 선택을 하는 일까지 잇따라 발생하자 권익위가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시도교육청 등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다.

담당 공무원의 개인 전화로 수백 통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반복 민원을 넣은 민원인이 1340명(48%)으로 가장 많았다. 국토교통부의 한 부서에는 300명 넘는 민원인들이 “우리 지역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가 놓일 수 있게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달라”며 민원을 넣었다. “전동 킥보드가 도로에 방치돼 있으니 2∼3시간 내로 치우라”며 제한 시간까지 정해 서울시에 민원을 넣은 사례도 있었다. 이 민원인은 서울시가 2∼3시간 안에 킥보드를 치우지 않았다며 이를 문제 삼는 민원도 수천 건 제기했다.

공무원을 때리거나 협박한 민원인도 1113명(40%)에 달했다. 부산 북구에서는 한 민원인이 행정 처리를 문제 삼으면서 “염산을 뿌리겠다”며 공무원을 협박한 혐의로 고발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전북 전주시에선 교도소에서 출소한 한 주민이 복지 혜택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서류를 너무 많이 요구한다”며 공무원을 주먹으로 때렸다. 또 실명을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는 ‘좌표 찍기’ 방식으로 공무원을 괴롭힌 민원인도 182명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전체 공공기관 중 140곳(45.3%)은 최근 3년간 악성 민원인에 대한 대처 방식 등 교육을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규 권익위 부위원장은 “권익위는 악성 민원에 효율적으로 대응 가능한 교육과 컨설팅 등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공무원 협박#악성 민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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