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동 송별회 갔다가 참변… “내 직장동료 잃은듯 먹먹”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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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역 역주행車 참사]
시민들 “남의 일 같지 않아”
9급서 5급까지… 성실한 공무원
동료들과 승진 축하하던 은행원
평범한 이웃 참변에 충격-애도… 사고현장엔 국화꽃-추모 쪽지


9급으로 시작해 5급까지 어렵사리 오른 공무원, 아들 하나 딸 둘을 키우는 은행원 아빠, 승진 소식에 동료들의 축하를 받던 회사원….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 교통사고로 숨진 사망자 9명은 모두 평범한 아들, 아빠, 동료, 가장들이었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회식을 하고, 대중교통을 타고, 길가에서 담소를 즐기던 일상의 장소가 참사 현장이 됐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인근 회사원들은 “그들에게 어제 벌어진 일이, 내일은 나한테 벌어질 수도 있다”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 회식 도중 전화 받으러 나갔다가 참변

현장 조사하는 과학수사대
2일 오전 경찰 과학수사대가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에서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1일 오후 9시 26분경 이곳 인근에서 역주행하던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뉴시스
현장 조사하는 과학수사대 2일 오전 경찰 과학수사대가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에서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1일 오후 9시 26분경 이곳 인근에서 역주행하던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뉴시스
사망자 김모 씨(52)는 9급 세무공무원으로 구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최근 서울시 5급 사무관까지 승진했다. 동료들 사이에서 김 씨는 “누구보다 성실했던 사람”으로 불렸다. 김 씨는 어린 시절에 한쪽 눈을 다쳐 실명했고, 한쪽 팔도 불편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모를 정도로 열심히 맡은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은 김 씨가 이끄는 팀이 서울시 ‘동행매력협력상’을 받은 기쁜 날이었다. 그의 팀은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 이전, 야외 밤 도서관 행사 등을 맡았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공로를 인정받았다. 한 동료는 “이태원 분향소 철거하고 난 다음에 직접 아침 일찍부터 가서 쓰레기를 줍고 청소할 정도로 성실했던 사람”이라며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망자 윤모 씨(31)는 2020년 7급 지방직 공개채용을 거쳐 서울시에 들어왔다. 그는 평소 직원들 사이에서도 똑부러지는 직원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윤 씨의 상사는 “다른 좋은 기업에 갈 수 있는 실력이었는데도 본인이 공직을 선택한 직원이었다”며 “부서 내에서도 솔선수범해 업무를 하고 대인관계도 굉장히 좋아서 동료 직원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망자 박모 씨는 신한은행 한 지점의 부지점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사고 당일 현장 인근의 한 호프집에서 동료들과 승진 축하 회식을 하다가 잠시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갔다. 그 순간 가해 차량이 돌진해 화를 입었다.

신한은행 소속 이모 센터장 등 다른 신한은행 직원 3명도 이날 인사 이동 전에 송별회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이 센터장은 슬하에 아들 하나, 딸 둘을 둔 아빠였다. 큰딸과 작은딸은 사회인이지만, 막내아들은 아직 고등학생인 것으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직장인 추모 행렬… 유가족들 통곡

참사현장 추모 글
서울 중구 시청역 교통사고 현장에 2일 한 학생이 쓴 추모글이 놓여 있다. “어쩌면 퇴근 후 밥 한 끼 먹고 돌아가고 있던 그 
길에서 운명을 달리한 아홉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참사현장 추모 글 서울 중구 시청역 교통사고 현장에 2일 한 학생이 쓴 추모글이 놓여 있다. “어쩌면 퇴근 후 밥 한 끼 먹고 돌아가고 있던 그 길에서 운명을 달리한 아홉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사고 하루 뒤인 2일 사건 현장에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갑자기 벌어진 대형 참사가 ‘남 일’만은 아니라는 두려움과 공감대가 퍼지고 있었다. 특히 매일 사고 현장 근처를 오갔던 인근 회사원들은 충격이 더 크게 와닿는 분위기였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 교차로 한편에는 시민들이 하얀 국화를 놓고 갔다. ‘애도를 표하며 고인들의 꿈이 저승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추모 포스트잇도 붙었다. 광화문의 한 회사원은 “내 직장 동료를 잃은 듯 먹먹하다”고 말했다. 한 시청 직원은 “사고 장소는 자주 밥 먹으러 가는 일상적인 장소”라며 “직장 동료를 잃은 후 ‘밖에 나가기 무섭다’며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했다.

갑자기 변을 당한 사망자의 유가족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달려왔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망자 김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심정지라는 얘기를 듣고 달려왔다”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울었다. 김 씨의 고등학생 딸은 장례식장 한쪽 계단에 앉아 아버지의 죽음에 흐느껴 울었다.

이날 서울대병원 1, 2층에 마련된 신한은행 직원 4명의 빈소엔 은행장 등이 보낸 화환이 놓이고 조문객들로 붐볐다. 반면 지하 1층에 마련된 주차관리 직원 3명의 빈소는 10여 명의 조문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신무경 기자 yes@donga.com
#시청역 역주행 참사#추모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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