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완'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2부 〈6〉 국토 횡단 숲길 ‘동서트레일’
경북~충남 5개시도 물길-숲길로 연결…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49km 길어
57개 구간별 식생 달라 매력 가지각색… 방치된 곳 휴식-숙박공간으로 활용
“숲 해설가 등 일자리 3480개 창출 효과”
“여기가 한국의 ‘숲티아고’ 출발점입니다. 동서트레일이 2026년 개통하고 이곳에서 출발해 계속 걷는다면 충남 서해안 안면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17일 경북 울진군 근남면 망양정에서 이상학 경북도 산림레포츠팀장이 발아래 펼쳐진 숲과 멀리 수평선을 그리는 푸른색 바다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망양정은 산림청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조성 중인 한반도 횡단 숲길인 ‘동서트레일’의 출발점이자 종점이다. 발길을 옮겨 걷기 시작하자 싱그러운 솔 내음과 시원한 동해 바닷바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곧이어 나타난 왕피천 위로 물과 햇빛이 만든 윤슬이 펼쳐졌다. 왕피천은 산란기만 되면 연어 수백 마리가 몰려들고 때때로 수달도 모습을 드러내는 1급수 하천이다.
때 이른 무더위에 슬슬 지칠 무렵 다다른 근남면 행곡리의 처진소나무는 거대한 그늘로 여행자의 심신을 달래 줬다. 이어진 금강송 군락지에서 만난 탐방객 김종환 씨(58)는 “금강송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에 숨 쉴 때마다 몸속 찌든 때가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 숲길로 한반도 횡단
산림청과 경북, 충북, 대전, 세종, 충남 등 5개 시도 및 21개 시군은 한반도를 횡단하며 걷는 동서트레일을 조성 중이다. 지역별 특성에 따라 총 57개 구간이 마련 중인데, 구간별로 14∼16km씩 전체 거리는 849km에 달한다.
동서트레일은 다양한 지역을 지나는 만큼 구간별로 가지각색의 매력을 뽐낸다. 이날 찾은 울진 구간은 관동팔경의 최고 명소로 불리는 망양정에서 출발해 천연기념물 155호 성류굴을 거쳐 정부가 집중 보호 중인 금강송 군락지로 이어졌다. 이 지역 금강송은 조선 시대 궁궐을 지을 때 자재로 쓰일 정도로 가치가 높은 최상급 소나무다.
동서트레일은 산을 오르내리는 숲길부터 물길을 따라 걷는 하천길까지 다양한 코스로 조성될 예정이다. 구간별 난도는 ‘매우 쉬움’부터 ‘매우 어려움’까지 5단계로 구분해 탐방객들이 선택할 수 있다. 현재 경북 울진과 봉화 구간(33km)만 개통됐고, 나머지 구간은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개통한다. 산림청 관계자는 “9월 충남 태안 구간 개통에 이어 올해 말까지 전체 구간 중 35%를 개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재경 울진군 정원팀장은 “동서트레일 구간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고, 탐방객들의 성취감과 재미를 더할 ‘스탬프(도장) 랠리’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빈집과 폐교 다시 채워
동서트레일은 세계적인 걷기 여행길로 꼽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비교된다. 산티아고 순례길(800km)보다 49km 더 길고, 숲길과 들길 물길 등을 지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아를 성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다.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구간마다 역사·문화 유적지와 사찰 등 종교 유적지도 만날 수 있다. 이 팀장은 “국내 걷기 여행 마니아들이 숲과 산티아고를 합쳐 ‘숲티아고’로 부르며 한껏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산림당국도 동서트레일을 해외 유명 순례길 못지않은 여행길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특히 하루 10∼20km를 걸어야 하는 탐방객들이 주변 마을로 내려와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거나 숙박까지 할 수 있도록 코스를 설계했다.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시골 곳곳에 방치된 빈집과 폐교를 활용한 ‘시골 재생’ 효과도 노린다. 동서트레일 구간 안에 거점마을 90곳을 선정하고, 빈집과 폐교를 활용해 탐방객이 휴식하고 숙박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경북 지역만 해도 올해 기준 빈집은 1만3880채, 폐교된 학교는 241곳에 이른다.
이날 탐방 도중 머무른 근남면 수곡초교도 폐교에서 탐방객 휴식처로 탈바꿈을 준비 중이다. 산림청은 내년까지 이곳에 탐방객을 위한 캠핑장과 숲길안내센터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동서트레일을 통해 348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941억 원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숲으로 복지를… 일자리도 창출
경북도는 전체 면적 가운데 70%인 129만 ha가 산림일 정도로 숲이 많다. 경북도는 이 같은 자원을 적극 활용해 미래 세대를 위한 ‘산림복지’ 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유아숲체험원과 시민들을 위한 치유의숲 등 산림치유공간 조성 사업이 대표적이다. 숲해설가와 산림치유지도사, 유아숲지도사 등을 양성해 ‘숲 일자리’도 적극 창출하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임산물을 가져다주던 숲은 우리 사회가 처한 소멸 위기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소중한 자원 역할을 하고 있다”며 “난개발로부터 숲을 보호하는 것을 책무라고 생각하고 숲 보존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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