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발생한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 흉기 위협’ 사건에 연루된 의원 두 곳에 대한 추가 수사로 의료용 마약류 등을 불법 투약해 온 의사와 병원 관계자, 투약자 40여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의료용 마약류나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를 불법 투약 영업해 온 의사 염모씨 등 2명을 비롯한 의원 두 곳 관계자 16명과 투약자 26명 등 42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적발했다고 4일 밝혔다.
이 중 의사 2명은 구속됐다. 경찰은 또 의사들의 재산 총 19억9775만 원에 대해 기소 전 추징 보전 결정을 받았다.
지난해 8월 약물에 취해 차를 몰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롤스로이스 사건’ 운전자 신모(28)씨에게 치료 목적 외의 프로포폴 등 마약류를 처방한 염모씨 등 병원 관계자 7명(의사 1명·간호조무사 3명·행정직원 3명)은 서울 강남 소재 의원에서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수면 목적 내원자 28명에게 수면 마취제 계열의 마약류 4종(미다졸람, 디아제팜, 프로포폴, 케타민)을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염씨 등은 투약 1회당 현금 30~33만원을 받아 총 549회에 걸쳐 8억5900만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염씨는 지난달 1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경찰은 이번에 염씨가 신씨의 약물 운전이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퇴원시켜 의료법 등에 규정된 ‘환자의 안전한 귀가’ 등 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도 추가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점검을 피하고자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진료기록부를 작성하거나 진료 기록을 수정한 혐의도 있어 의료법과 마약류 관리법 위반도 있다.
경찰은 ‘람보르기니 운전자’에게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를 처방한 의사 A씨와 의원 관계자 9명(의사 1명·간호사 1명·간호조무사 7명)도 약사법·보건범죄단속법 위반 등 혐의로 이날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A씨 등은 지난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서울 강남구 소재 A씨 의원에서 내원자 75명에게 모두 8921회에 걸쳐 에토미데이트 4만4122㎖를 판매해 12억541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가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은 점을 적극 이용해 불법 투약 영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A씨는 내원자가 늘어나자 자신의 의원 건물이 있는 상가의 공실을 임대해 관할 구청에 신고하지 않고 몰래 영업을 해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 의원에서 약물을 투여받은 내원자들은 이상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에는 투약 후 온몸을 덜덜 떨거나 구토를 하는 등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 담겼다. 내원자들은 약을 더 달라고 의료진에게 손 모아 빌거나, 의료진을 껴안기도 했다.
이들은 에토미데이트 투여 대가로 회당 10~20만원씩을 받아 챙겼으며, 내원자들은 하루 최대 56회까지 약물을 투여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에서 람보르기니 차량을 주차하다 시비가 붙은 상대방을 흉기로 위협한 홍모(30)씨도 이 의원에서 약물을 투약한 바 있다.
다만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효능 및 용법이 비슷하지만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돼 있지 않아, 경찰은 이들에 대한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지 못 했다.
아울러 경찰은 염씨가 운영하는 의원에서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 투약받은 26명을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이 중 5명은 수면 마취에서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도 퇴원하자마자 운전을 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도 적용됐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법적·제도적 사각지대에 대한 관계 기관의 개선 조치도 주문했다.
강선봉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2계장은 “의료진이 없을 때 스스로 목에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하거나 더 투약해 달라며 의사에게 사정하는 행동들이 관찰됐다. 에토미데이트의 부작용은 프로포폴 등 향정신성 의약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며“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하거나 마약류와 동등한 수준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현행 도로교통법에 의료용 마약류 사용 후 자동차 운전금지 시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점, 현행 마약류 관리법이 의사가 향정신성의약품을 의료목적 외로 투약하는 경우에는 가중 처벌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관계 기관에 개선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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