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미데이트 9천회 투여 의사, ‘솜방망이’ 처벌…“마약류 지정해야”

  • 뉴시스
  • 입력 2024년 7월 5일 14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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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8921회 거쳐 4만㎖ 판매…범죄수익 12억
몸 덜덜 떨며 "약 더 달라" 손 모아 비는 투약자
오남용에도 마약 아닌 전문의약품…처방 쉬워
"사회적 해악성 고려해 마약류 지정 검토해야"

ⓒ뉴시스
‘제2의 프로포폴’이라 불리는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를 내원자 70여명에게 투여한 의사가 마약류 관리가 아닌 약사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어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의사는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아 처방과 판매가 비교적 간편한 에토미데이트를 돈벌이에 악용했다. 최근 에토미데이트 오남용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에서 람보르기니 차량을 주차하다 시비가 붙은 상대방을 흉기로 위협한 홍모(30)씨에게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50대 의사 A씨(구속) 등 의원 관계자 9명을 약사법·보건범죄단속법 위반 혐의로 전날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지난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내원자 75명에게 회당 10만~20만원을 현금으로 받고 하루에 56회까지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를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4년간 총 8921회에 걸쳐 에토미데이트 4만4122㎖를 판매·투약해 12억5410만원을 챙겼다.

에토미데이트는 수면내시경 검사에서 흔히 쓰이는 전신마취제다. 그 효능과 용법이 프로포폴과 유사해 ‘제2의 프로포폴’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프로포폴이 2011년 마약류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반면 에토미데이트는 전문의약품으로만 관리되고 있다.

따라서 판매자는 마약류 관리법이 아닌 약사법 위반으로만 처벌을 받기 때문에 판매자들 대부분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특히 약물 취급 권한을 가진 의사에 대한 혐의 입증은 더욱 어려워 법망을 빠져나갈 우려도 적지 않다.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변호사는 “다른 혐의가 함께 인정되는 게 아니라면 의사가 약사법 위반 행위 만으로 실형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구매자 역시 의약품안전규칙에 따른 과태료 처분 대상이 될 뿐 형사처벌 되지 않는다.

에토미데이트가 마약류로 취급되지 않는 건 학술적으로 의존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약류관리법은 향정신성의약품을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고 오남용할 때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의약품으로 규정한다. 실제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도 에토미데이트는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나 에토미데이트의 오남용 사례를 볼 때 마약류 지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경찰이 전날 공개한 폐쇄회로(CC)TV를 보면 A씨로부터 약물을 투여받은 내원자들은 이상증세를 보였다. 투약 후 온몸을 덜덜 떨거나 구토하는 모습, 몸을 가누지 못해 병상에서 떨어지는 모습 등이 영상에 담겼다.

내원자들은 약을 더 달라고 의료진에게 손 모아 빌거나, 약을 더 주겠다고 하는 의료진을 껴안기도 했다. 하루 최대 56회 반복 투약한 내원자도 있었다. 중독성이 약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마약으로 쉽게 옮아갈 위험성이 있는 이른바 ‘게이트 드러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큰 점도 마약류 지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

실제로 A씨가 운영하는 의원에 내원했던 이들 중 12명은 서울 강남 소재의 또다른 의원에서 미다졸람, 디아제팜, 프로포폴, 케타민 등 마약류를 투약한 혐의로 적발돼 이번에 검찰에 넘겨졌다.

전문가들은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하기에 앞서 해당 약물이 어떤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지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고 말한다.

마약퇴치연구소장인 이범진 아주대 약대 교수는 “이번 사례처럼 약물을 한 채 운전을 하고 누군가를 흉기로 위협하는 등 치료 목적보다는 중독자를 양성하고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하면 마약류 지정을 검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더 많은 처방 사례와 대상 환자의 특성 조사, 사회적 비용 계산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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