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지키느라 교육-연구 마비” 병원 떠나는 교수들[기자의 눈/박성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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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정책사회부
박성민·정책사회부

“한 달에 20일씩 당직을 서다 ‘더는 못 버티겠다’며 나가는 사람을 어떻게 붙잡겠어요.”

부산대병원의 한 교수는 하나둘 병원을 떠나는 동료 교수를 지켜보는 착잡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놨다. 이 병원에선 올 2월 의료공백 사태 이후 교수 555명 중 33명(5.9%)이 진료실을 떠났다. 병원을 떠난 교수 중 상당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병원 이탈 후 과로에 지쳐 수도권 대학병원이나 2차 병원으로 옮긴 경우다.

표면적으로는 과로가 원인일 수 있지만 더 들여다보면 “개원한 동기보다 돈은 못 벌어도 연구와 교육에서 느끼던 보람 때문에 버텨 왔는데 이젠 그마저 기대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사직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의대 교수들은 비중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진료·교육·연구를 동시에 한다. 대학병원에 남은 것도 후학을 키우며 연구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올 2월 의대생과 전공의가 학교와 병원을 떠나며 제자들이 사라졌다. 또 눈앞에 닥친 의료공백을 메우느라 연구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경영난에 빠진 대형병원들도 연구비 지원을 줄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지방 국립대 필수과 교수는 “인재를 제대로 키우고 싶은데 의대 증원으로 학생이 급증해 지금까지처럼 가르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한다니 진료와 당직은 여전할 텐데 연구 시간은 어떻게 확보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2027년까지 지방 국립대 교수를 1000명 늘려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진료·연구도 정상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지금도 못 구하는 교수를 어떻게 늘린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법정 기준인 ‘교수 1인당 8명’에 못 미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확보한 의대 32곳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내년 의대생이 1509명 늘면 주요 7개 임상과에서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8명을 넘는 곳이 19곳이나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교수들에게 진료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까지 잘하라고 주문할 수 있을까. 정부는 “하버드대 의대 수준의 의료를 기대하면서 후진국 의대 수준으로 후퇴시키려 한다”는 말이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 왜 나오는지 돌이켜보고 지금이라도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기자의 눈#의대 증원#의료 공백#교수#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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