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못찾는 의정 갈등]
정부 “내년 정원 감축” 내세워 압박… 병원 “2월기준 일괄 사직 수리” 요청
다른 병원 수련, 수도권 쏠림 우려… “같은 권역-같은 전공에만 가능해야”
정부가 전국 수련병원 221곳에 ‘15일까지 미복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를 사직 처리하지 않을 경우 내년도 전공의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전날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처분을 안 하는 대신 15일까지 돌아오든 그만두든 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바 있다. 수련병원들은 “일주일 만에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전공의 거취를 모두 정하라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기간 연장 및 사직 시점 조정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 수련병원 “2월 기준으로 사직서 일괄 수리”
보건복지부는 전날 미복귀 전공의 대책 발표 직후 각 수련병원에 공문을 보내 “15일까지 소속 전공의 복귀 및 사직 여부를 확인해 결원을 확정하고 17일까지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 신청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수련병원에서 기한을 지켜 조치하지 않을 경우 내년도 전공의 정원 감원 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압박했다.
정부는 이달 15일까지 결원을 확정해야 22∼31일 추가 모집을 거쳐 9월부터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에서 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사직 후 1년 내 동일 연차·전공으로 복귀할 수 없다’는 수련 규정에 특례를 적용해 사직 전공의가 원하는 어느 병원이든 지원할 수 있게 하겠다고도 했다.
공을 넘겨받은 수련병원들은 난감한 모습이다. 전공의에게 사직 의사를 확인하려 해도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미복귀 전공의를 일괄 사직 처리하자니 결원이 채워질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을 경우 전공의 정원 감축이 불가피하다.
결국 대한수련병원협의회는 9일 온라인 회의를 열고 “미복귀 전공의 사직서를 병원 이탈 직후인 올 2월 29일자로 일괄 수리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또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복귀 여부 확인 시한을 22일까지로 일주일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5대 대형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은 15일까지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를 일괄 사직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수련병원 사이에서 다소 엇갈리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 의료계 “전공의 수도권 쏠림 가속화”
협의회에서 사직 시점을 올 2월 말로 정한 것은 전공의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이 부당한 만큼 해당 명령을 철회한 6월이 아닌 실제 사직서를 낸 2월을 사직서 수리 시점으로 인정해 달라”는 입장이다. 그래야 병원 이탈에 따른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고 퇴직금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수련병원에 보낸 공문에서 “병원-전공의 당사자 간 법률관계는 정부가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2월 말 수리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의회는 또 사직한 전공의가 9월부터 다른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경우 “같은 권역, 같은 전공일 때만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방침대로 어느 병원이든 옮길 수 있게 하면 전공의들이 서울 소재 5대 대형병원으로 몰리며 지방 의료공백이 더 악화될 것이란 취지에서다. 대한의학회도 이날 “(정부 방침대로라면) 지방 전공의 또는 비인기과 전공의가 서울의 대형병원이나 인기과로 이동 지원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어 지방 필수의료의 파탄은 오히려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협의회가 제안한 전공의 복귀 여부 확인 시한 연장과 권역 제한 등을 검토 중”이란 입장을 밝혔다.
한편 전공의 대다수는 정부와 수련병원 방침과 관계없이 의료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 수도권 대학병원 사직 전공의는 “한국 의료와 정부의 대응에 실망했다”며 “사직서가 수리되더라도 다시 필수의료 수련을 받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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