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른바 ‘유럽 간첩단’ 누명을 쓰고 7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신근 씨(82)가 재심 끝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징역 7년이 확정된 지 54년 만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지난달 13일 확정했다.
유럽간첩단 사건은 1960년대 ‘동백림 사건’ 이후 터진 또 다른 공안 사건이었다. 해외 유학 중 동베를린(동백림)을 방문한 유학생들이 1969년 간첩 혐의로 기소됐는데, 당시 고려대 대학원생이던 김 씨는 1966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유학하던 중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지령 서신을 전달받고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읽은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김 씨가 케임브리지대에 재직 중이던 박노수 교수에게 포섭됐다고 주장했고, 김 씨는 1970년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이 확정됐다. 함께 기소된 박 교수와 김규남 의원은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뒤 1972년 7월 집행됐다.
50여 년간 ‘공안사범’의 멍에를 지고 살아온 김 씨는 2022년 재심을 청구했다. 수사 과정에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혹독한 고문이 이뤄진 끝에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였다. 박 교수와 김 의원 역시 유족이 청구한 재심에서 고문과 협박에 의한 진술이 인정돼 2015년 무죄가 확정된 상태였다.
김 씨의 재심을 담당한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 중앙정보부의 고문 내용을 판결문에 담았다. 당시 수사관들은 김 씨를 묶고 전기고문을 하면서 ‘평양에 갔다 왔냐’는 한 가지 질문만을 반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김 씨를 알몸 상태로 매달고 물고문을 자행하거나, 마음에 드는 내용으로 진술할 때까지 폭행을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씨는 당시 조사 과정에 대해 “내가 짐승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검찰은 재심에서도 김 씨의 일부 혐의는 여전히 유죄라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씨가 불법 구금, 고문 등 가혹행위로 말미암아 중앙정보부에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증거능력이 있는 일부 진술에 대해서도 “김 씨가 국가의 존립·안전 등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나 그러겠다는 인식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 불복했지만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에 오류가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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