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반병실을 중환자실로 바꾸거나 3인실 이상인 입원실을 1, 2인실로 바꾸는 대형병원에 지원금을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의 의료 공백을 계기로 상급종합병원이 설립 취지에 맞게 중증·응급 환자 위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이다.
10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11일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방안’을 논의한다. 이 방안의 핵심은 의료 공백 이후 비상진료 체계를 통해 중증·응급 환자 위주로 운영 중인 상급종합병원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중증·응급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일반병상 수를 줄이는 만큼 상급종합병원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반병상 수를 줄이면 받을 수 있는 환자가 줄고 상급종합병원이 자연스럽게 중증 환자 치료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에 47곳뿐인 상급종합병원은 원래 3차 병원으로 의료전달체계상 경증 환자를 치료하는 1, 2차 병원과 달리 중증질환자에게 난도 높은 의료 행위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경증 환자까지 5대 대형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으로 몰리면서 정작 중증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일반병상 줄일수록 인센티브”… 병원 “수가 올려도 손실 불가피”
상급종합병원 체질 개선 정부 “중증질환 수술 등 수가 인상” 의료계 “속도 조절하면서 시행해야”
올 2월 의료공백 사태 발생 전에는 상급종합병원 문턱이 낮다 보니 경증 환자도 지방에서 KTX를 타고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에 와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지방 의료체계는 더 열악해졌고, 수도권 대형병원이 경증환자 치료에 치중하면서 정작 중증·응급환자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런데 의료공백 사태 이후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면서 상급종합병원은 본의아니게 중증·응급환자 위주로 진료와 수술을 하게 됐다. 복지부에 따르면 7월 1∼5일 상급종합병원에서 일반병실 입원 환자는 의료공백 사태 전보다 24%가량 줄었다. 지난달 11일 기준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중 경증 환자 비율 역시 2월 초와 비교하면 15.9% 감소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경증환자는 1차 병원(동네의원)이나 2차 병원(중소병원)에 가도록 하고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 환자 진료에 집중한다는 원칙을 확립할 방침이다.
정부는 먼저 중증환자 중심으로 진료와 수술을 하더라도 병원 경영에 추가 부담이 없도록 중환자실 입원이나 중증질환 수술 등의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되는 진료비)를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구체적인 수가 인상 폭은 향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논의를 거쳐 결정할 방침이다.
또 일반병상 감축률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외래 환자를 덜 받을수록 병원에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의 결과를 참고하며 일반병실 감축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 규모와 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과 지역 사정 등을 고려하며 병원별로 일반병실을 얼마나 줄이면 좋을지 목표치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대형병원 상당수가 이미 병상을 대폭 늘린 상황이라 정부가 속도 조절을 하면서 상급종합병원의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종훈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전 고려대 안암병원장)는 “평균적으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중증환자 비율이 50∼60%에 머물고 있는 만큼 이를 높이도록 정부가 독려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상급종합병원들이 계획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턱대고 일반병상을 줄이면 의료공백 사태로 악화된 병원의 경영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의개특위 위원은 “중증환자 관련 수가를 올려도 경증환자를 줄이면 감소하는 매출액을 다 보전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그동안 병상을 대폭 늘려 온 병원들의 경우 경영효율화와 병행해야 정책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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