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이후 잡음이 끊이지 않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11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계획은 철회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되,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는 사업 자체는 계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오 시장은 이날 서울시청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국가상징공간은 국민 자긍심을 높이는 게 핵심”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민과 전문가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국민의 바람과 뜻이 담긴 의미 있는 장소로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지난달 25일 제74주년 6?25를 맞아 발표한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 건립 방안에서 1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광화문광장을 ‘국가상징공간’으로 조성, 이를 위해 광장에 태극기 게양대와 미디어 파사드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치권,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태극기 설치 여부와 장소·디자인, 예산 등을 두고 ‘지나친 애국주의’, ‘예산 낭비’ 같은 지적이 잇따랐다.
오 시장은 이날 기자설명회에서 “광화문광장은 서울 도심의 심장부이자 역사와 문화, 시민정신이 공존하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국가상징공간”이라며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순신장군, 세종대왕 동상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의지에서 시작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오 시장은 국가상징조형물의 형태, 높이, 기념할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 모든 부문에서 시민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또 시민단체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기구를 활용해 국가상징공간과 조형물의 규모부터 디자인에 이르는 전반적 구상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오 시장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가 상징물을 국기로 쓰고 있어, 국가상징공간 사업을 추진 과정에서 (태극기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이라면서도 행정안전부가 국가상징으로 지정한 태극기(국기), 애국가(국가), 무궁화(국화), 국장(나라문장), 국새(나라도장) 등 다른 국가상징물을 조형물의 소재로 삼아도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태극기를 설치할 경우엔 높이 가변형 게양대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평상시엔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태극기를 연출하고 각종 기념일엔 깃대를 올려 국기를 게양하는 식이다. 처음에 공개된 100m 태극기가 지나치게 높고,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다만 오 시장은 미디어 폴이나 미디어 월 형식으로 6·25전쟁 당시 16개국 파병장병과 6개국 의료지원 장병들의 명단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호국 보훈’의 의미를 담고 싶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보통 때는 6·25전사자 명단을 쓰고 8·15 광복절이나 4·19 혁명 등 행사 때마다 기억해야 할 선열들의 이름을 띄우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미 광화문광장에 설치돼 있는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동상과 같은 ‘축선’에 태극기를 설치하지 않고 세종로공원사업과 어울릴 수 있게 구상한다는 계획이다.
오 시장은 예산에 대해선 “당초 태극기 게양대 100m를 전제로 한 공사비는 30억 원이고 나머지 80억 원은 그 주변부 ‘꺼지지 않는 불꽃’, ‘미디어 월’, 바닥분수 등 비용에 해당한다”며 “비용을 여유롭게 해놔야 설계가 융통성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책정을 해놨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광화문 국가상징공간 조성과 관련해 국토교통부, 국가건축위원회(국건위)에게 항의를 받았다는 데 대해선 “그동안 광화문광장 조성과 관련해선 국토부, 국건위와 논의한 적이 없어 실무자들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며 “지난주부터 엊그제까지 계속 접촉해 얘기를 나눴고 국토부, 국건위도 서울시 사업에 협조하는 걸로 의견이 정리가 됐다”고 덧붙였다.
오 시장은 ‘국가상징공간을 아예 만들 필요가 없다’, ‘광화문광장이 아닌 다른 장소로 해야 한다’ 등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그런 의견까지 다 받겠다”고 말했다.
한편 광화문광장 내 국가상징시설 조성은 올해 8월부터 11월까지 설계 공모를 추진하고 2025년 4월까지 기본·실시 설계 후 같은 해 5월 착공, 12월 준공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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