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쑥대밭이 된 집에서 정뱅이마을 주민 김중훈 씨는 이웃의 만류에도 멀쩡한 식료품과 집기류를 찾아 집 밖으로 옮기고 있었다. 오전 내내 말없이 복구 작업을 이어가던 김 씨는 한숨과 함께 나지막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끝이 안 보이네요.”. 이내 고개를 숙인 김 씨는 묵묵히 플라스틱 통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11일 집중호우로 전날 물에 잠겼던 대전 서구 용촌동 정뱅이마을은 폭우가 남긴 상처로 가득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무너진 비닐하우스와 진흙으로 가득 찬 도로가 펼쳐졌다. 주민들은 굴삭기와 덤프트럭 등 중장비를 동원해 진흙과 잔해를 걷어내고 있었다.
주민 대부분 인근 대피소로 피신한 탓에 마을에는 소수의 인원만 남아있었다. 서울에서 전날 급하게 소식을 듣고 내려온 어정선 씨도 그 중 한명이었다. 이곳이 시댁이라고 말한 어 씨는 어제부터 쉬지 않고 복구 작업을 이어왔다고 했다. 진흙이 가득 찬 시어머니의 방을 치우며 어 씨는 “처음 집 상태를 봤을 때 도저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감이 오지 않았다”라며 “어머님께서는 집이 아닌 요양원에 계셔서 다행이었다”라고 말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뱅이마을은 전날 갑천 상류와 두계천 합류 지점 인근 제방이 무너져 27가구에 사는 30여명의 주민이 고립됐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마을 대부분이 잠기며 큰 피해를 보았다. 고립됐던 주민들은 모두 구조돼 흑석동 기성종합복지관으로 대피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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