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명복 [소소칼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6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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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죽음 앞에서야 새삼스레 생을 더듬어 보는 산 자들의 만용조차 너무나 죄스럽게 느껴진다. 세상 사람들은 정말이지 계속 죽는다. 젊은 채로, 행복 또는 불행의 한가운데서, 자식을 남기고, 부모를 뒤로하고 죽어버린다. 수습기자 때 참사 현장과 빈소를 쏘다니며 이런저런 죽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기자 생활 8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믿을 수 없이 기만적인 죽음의 얼굴 앞에선 맥없이 무참해진다.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인도 돌진사고 현장에 7일 고인들을 추모하는 국화꽃 등 추모용품들이 쌓여있다(왼쪽). 지난달 27일 안산시 아리셀 공장 화재 희생자 추모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고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인도 돌진사고 현장에 7일 고인들을 추모하는 국화꽃 등 추모용품들이 쌓여있다(왼쪽). 지난달 27일 안산시 아리셀 공장 화재 희생자 추모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고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17년 늦은 겨울엔 유독 화재와 참사가 잦았다. 가을에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하며 장만했던 파란 롱패딩엔 늘 분향 냄새가 축축하게 배 있었다. 당시 나를 훑고 지나갔던 죽음 중 몇몇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들이 그렇게 죽어있는 동안 나는 자랐고, 세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기자를 피하는 유족들에게 다가가며 했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한 것 같다.

12월 중순 즈음인 내 생일에도 난 누군가의 빈소에 앉아 죽음을 취재해야 했다. 79세 남성이었다. 영등포구의 한 허름한 흙집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출동했는데 불길을 다 잡고 보니 빈집인 줄 알았던 그곳에 한 노인이 죽어 있었다. 군에서 퇴역 후 직업이 없었고, 병을 앓느라 가난해졌으며, 연금은 부족했고, 그래서 가스를 끊어버리고 휴대용 버너로 라면도 끓여 먹고 언 몸도 녹였더라는, 그 불이 어느 날은 다른 걸 태우기 시작해 급기야 집을 다 집어삼켜 버리고 말았다는 게 대략의 사연이었다.

한바탕 불난리 뒤 물난리까지 겪은 그 집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불길을 잡느라 쓰인 어마어마한 양의 소방용수를 타고 일정한 크기로 적당히 봉해진 검은 봉지들이 흙더미와 함께 집 바깥으로 한가득 쏟아져 나와 있었다. 그 봉지들이 좁은 골목을 점령해 그걸 밟고 화재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반소된 집에 남은 미납 고지서에서 노인의 이름을 찾았다. 그 이름을 가지고 빈소를 찾았다.

텅 빈 빈소를 아들 내외가 지키고 있었다. 내가 누구고 무엇하러 왔는지 설명했더니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들이 날 한켠에 앉혔다.

아들은 페인트칠해 돈을 버는 사람이었다. 월급을 아무리 쪼개도 아버지 드릴 여윳돈이 안 생겨 몰래 아르바이트를 해 매달 2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드렸지만 몇 년 전부터 그마저도 못 드릴 정도로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1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아버지는 하루에도 수차례 씩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목포에 있는 땅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2, 3시간씩 이어지곤 했던 그 역정을 아들은 묵묵히 받아냈다. 어떤 날은 하루만 더 기다리시라고 달래뒀다가 그 다음날엔 동사무소 직원이 보름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고, 이후엔 은행 직원이 일주일만 더 기다리라고 했다고 매번 다른 거짓말로 아버지를 다독였다. 그 아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였다.

노인은 17년 전 직장암 수술을 받으며 장을 잘라냈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별도의 장치에 봉지를 달아 수시로 흘러나오는 변을 받아내야 했다. 불에 탄 집 앞에서 내가 밟았던 흙더미 속 검은 봉지는 노인의 변이었다. 신발에 아비의 분뇨를 묻히고 온 어린 기자에게 그는 고해하듯 말했다. 매일매일 쌓이는 그 봉지들을 치워주는 것도 십수 년간 자신의 몫이었다고. 그런데 요샌 통 가지 못했다고. 겨울 공기에 말라 갈라진 그의 얼굴이 조용히 젖어갔다.

미숙한 수습기자였던 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죽음을 두고 무슨 기사를 써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가족들의 방치가 낳은 고독사가 아니었다. 열악한 주택구조로 인한 화재사도 아니었다. 불이 잘못 붙으면 아파트라도 도리가 없다. 나는 아직도 이들 부자에게 닥친 비극의 원인은 가난, 지독한 가난이었다고 믿는다. 당시 기사는 28년간 군에 복무하며 베트남전에 참전도 했던 노병이 안타깝게 숨졌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나갔지만, 참전한 적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생을 살다 죽어도 되는 건 아니었다.

2017년 12월 16일 자 6면 기사. 동아일보DB
2017년 12월 16일 자 6면 기사. 동아일보DB

또 다른 기억 하나.

크리스마스를 나흘 앞둔 2017년의 끝자락에 충북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큰불이 나 29명이 숨졌다. 그날 나는 이대 목동 병원에서 숨진 신생아들의 부모를 만나고 오는 길에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신문사 수습기자들은 모조리 제천으로 보내졌다. 각자 소방서와 경찰서, 화재 현장, 장례식장으로 흩어졌는데 난 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야 했다. 이번 화재로 숨진 이들의 빈소가 가장 많이 차려진 곳이었다.

조문객들은 장례식장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몇 층을 눌러야 할지 모르고 헤맸다. 층마다 알고 지내던 사람의 빈소가 차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천은 그렇게 작은 도시였다. 다른 층에 가서 또 울어야 하니 이웃들은 조금씩 아껴서 울었을 텐데도 빈소에선 통곡 소리가 계속 났다.

서울병원 장례식장은 보도가 많이 됐던 세 모녀와 두 목사의 빈소가 차려진 곳이기도 했다. 나는 이 중 한 목사의 빈소에 자주 들어갔는데, 참사 현장이 주는 위압감에 압도돼 뭘 묻지도 못하고 하릴없이 앉아있기만 했었다. 빈소에서 예배가 있을 땐 기도도 하고 성가도 불렀다. 그러다 보니 신자들이 밥도 주고 얘기도 해 주고, 어느새 망자의 가족들도 울거나 술을 마시다가 내게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풀어놨다.

이들 목사의 발인 날이 성탄절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취재 목적은 아니었고 참사 현장에 며칠간 있다 보니 나도 마음이 힘들어 돌아가신 목사들의 교회에서 성탄 예배를 드렸다.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납셨네.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노래를 성가대는 울면서 불렀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건지, 무엇으로 자신을 설득해 밀려오는 배신감에도 신앙을 지켜내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나도 많이 울었다.

많은 사람이 한날한시에 죽어 발인이 하루에도 수 건씩 겹쳤다. 나는 이승에 남은 이들의 표정과 울음을 끊임없이 옮겨 적어야 했는데 그게 참 괴로웠다. 아내와 딸, 장모를 한꺼번에 잃은 남자에겐 마지막까지 도저히 시선을 오래 둘 수 없었다. 그러면 그의 표정을 읽어낸 뒤 감히 공감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 같았고, 그래도 저 집은 자식이 셋이라서, 딸이 둘이나 남아서 다행이라는 생각 같은 것을 하게 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2017년 화재로 29명이 사망한 충북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  동아일보DB
2017년 화재로 29명이 사망한 충북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 동아일보DB
열 명이 넘는 망자가 모두 발인을 치른 뒤에야 나는 그 장례식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음날부턴 제천소방서를 취재하게 됐지만,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다시 누군가의 빈소로 향해야 했다. 외할머니였다.

하루 서너시간 눈 붙이고 다시 일하는 수습기자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할머니 빈소에서 밀린 잠을 실컷 잤다. 잠깐씩 정신이 들 때마다 이곳은 기자가 없는 빈소여서 다행이라고, 억울한 사람 없이 온통 슬프기만 한 사람들뿐이라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호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그 꿈결에 알았다. 그때의 안도감을 떠올리면 나는 또 기만에 속아 죽어간 사람들 생각에 하염없이 미안해지고 만다.

※‘잊혀지다’는 ‘잊히다’의 비표준어다.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소소칼럼#참사#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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