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 1만여 명이 정부가 제시한 사직 처리 디데이(15일)가 지나도록 복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서 수련병원들이 사직 처리에 나서자 의대 교수들이 하반기(9월) 신규 전공의 모집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일부 병원은 하반기 전공의 모집 때 사직 처리 인원의 빈 자리를 사실상 충원하지 않기로 했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고려대·가톨릭 의대 등 서울의 주요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 하반기 신규 전공의를 모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별 진료과 차원에서 인력 충원을 신청하지 않거나 모집 공고를 내되 선발은 하지 않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사직 인원 전원을 하반기 모집 때 새로 충원한다면 병원을 떠나겠다”는 교수들의 반발이 거세자 사직 또는 복귀 의사를 밝히지 않은 무응답 전공의와 사직 의사를 밝힌 전공의의 빈 자리를 사실상 채우지 않기로 했다.
서울대병원은 사직 처리한 전공의 800여 명 중 약 3%에 해당하는 30여 명만 뽑기로 했다. 복지부에 신청한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도 30여 명이다. 해당 인원은 이번 일괄 사표 수리와 관련이 없는 건강상 이유 등에 따른 결원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오승원 서울대 의대 비대위 홍보팀장은 “9월 전공의 모집은 이번 사직으로 인한 결원이 아닌, 기존의 결원에 대해서만 복지부에 신청하기로 했다“면서 ”비대위에서 진행한 교수 설문 결과와 사직 전공의들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또 ”서울대병원의 경우 사직서 수리는 7월15일이나 사직의 효력 발생 시점은 2월29일“이라면서 ”전공의들이 우려하는 무단 결근 등으로 인한 법적 문제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고려대 안암·구로·안산병원 등이 소속된 고려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자체 회의 결과 각 진료과 과장이 전공의 정원(TO)을 신청하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9월 전공의 모집 때 신규 전공의를 충원하면 기존 전공의들이 복귀할 수 있는 길이 막히는 데다 의대 증원 사태 속에서 새로운 전공의들과 손발을 맞추기 힘들다는 이유다.
앞서 비대위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고려대의료원 소속 전체 교수들을 대상으로 ‘9월 전공의 모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0.5%는 ‘전공의 모집 인원 공고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답했다. 18.9%는 ‘전공의 모집 인원 공고를 내되 선발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고려대 의료원은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진행하되, 모집 규모를 논의 중이다. 고려대 의료원 관계자는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2월29일자로 사직 처리하기로 가닥을 잡았다“면서 ”하반기 모집 규모는 아직 논의 중으로 임상과와 상의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둔 가톨릭대 의대 교수들도 사직 처리한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다른 전공의들로 채울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김성근 가톨릭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전공의들이 정부 정책에 항의하며 사직서를 냈는데, 빈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면 제자들이 돌아올 자리도 없어진다”면서 “이미 7~8개 진료과에서 신청 인원을 0명으로 제출했고, 다른 과들도 모집하지 말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가 현 사태를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원하는 바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면서 ”전국의 수많은 병원들이 도산 위기에 처해있고, 이대로라면 지역의료, 필수의료 현장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될 것이 자명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의료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면서 ”정부가 조속히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