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시설 내 10세 이하 36.4%…33.9%는 지적장애 등
절반 이상이 친모 보호 못 받아…친오빠 가해자 14.5%
‘특별지원 보호시설’에 입소…법제도 공백에 지원 미비
예산 절반 삭감한 여가부…“치료 프로그램 운영에 차질”
“애 아빠 차가 낡은 흰색 차였는데, 비슷한 차가 지나가기만 하면 아이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됐어요. 길을 건너다가 비슷한 차를 보면 애가 그 자리에 서 있거든요. 그대로 쓰러져서 119에 실려 가기도 했어요. 제가 끔찍하다는 표현을 잘 안 쓰는데 이건 상상을 초월해요.”
B특별지원 보호시설에서 일하는 김옥분 시설장은 입소아동의 상처가 예상보다 심각하고 깊었다고 밝혔다. 이들의 트라우마는 심각하고, 직면한 공포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친족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8명이 13세 이하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가해자의 약 71%는 친부나 계부 등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친족성폭력 관련 법제도가 미비해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특별지원 보호시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감춰진 피해자들: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 특별지원 보호시설 지원업무 실태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총 316명의 아동청소년들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14년 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던 특별지원 보호시설 4곳을 방문해 이 같은 보고서를 도출했다.
전체 입소 아동청소년의 피해연령을 보면 10세 이하가 36.4%로 가장 많고 11세 17.4%, 12세 14.2% 순이었다. 13세 이하의 피해자가 전체의 78.5%를 차지한 것이다. 또 피해자의 33.9%(107명)는 지적장애, 신체·정신장애 등에 해당했다.
이들의 가해자는 총 338명이었다. 이들 중 친부가 58%, 의부 및 모의 동거남이 12.7% 등이었다.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가해자의 71%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 밖에 친오빠가 14.5%였다.
반면 입소자의 52.2%가 부모의 이혼으로 친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친모의 극단적 선택 및 사망까지 합하면 58.2%에 달한다. 또 엄마와 함께 생활했다고 해도, 316명 중 27.2%인 86명의 친모가 지적장애 등을 갖고 있어 제대로 된 보호가 어려운 모습이다.
4촌 이내의 혈족, 인척, 동거 친족 등에게 피해를 입은 아동청소년들은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에 따라 특별지원 보호시설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생활할 수 있다. 심리상담, 치료, 의료법률 지원 등이 제공된다.
다만 이런 규정에도, 관련 법제도의 공백과 예산의 한계로 보호시설의 지원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주무부처가 일관되지 않고 시설이 잘 알려지지 않아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해당 시설에 입소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해당 시설의 운영 및 관리는 여성가족부 소관이지만 아동보호에 관한 사안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이에 따라 친족성폭력 피해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아동복지시설, 양육시설 등 일반 보호시설에 입소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시설에 보내지는 경우도 있었다.
가정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음에도 아동청소년들이 ‘원가정보호’ 원칙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야 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특별지원 보호시설은 여가부의 소관이나, 입퇴소 관련해서는 복지부 아동학대 전담부서의 절차를 따른다. 복지부의 아동보호서비스는 아동의 가정복귀를 목표로 진행된다.
여가부의 예산 삭감으로 피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치료회복 관련 프로그램도 난항을 겪고 있다. 여가부의 해당 사업 예산은 지난해 9억4700만원에서 올해 4억7400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로 인해 한 시설은 지난해 3500만원을 지원받았으나 올해 지원금은 1600만원에 그쳤다.
예산 삭감에 따라 피해 아동청소년 상담 횟수도 1년 10회가 아닌 총 10회로 제한했다. 입소부터 퇴소까지 총 10번의 상담만 제공한다는 것이다. 운영지침상 입소자는 해당 시설을 만 19세가 될 때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에 여가부 관계자는 “최근 부정 수급이 발생해 건전 재정 기조 하에서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예산 절감이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친오빠 등 가해자가 성인이 아닌 경우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는 점 ▲특별지원 보호시설 퇴소 청소년은 자립준비청년에게 지급되는 자립수당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퇴소 이후 피해자에 대한 사후 지원 제도가 전무하다는 점 등이 현 법제도의 공백으로 뽑힌다.
여가부 관계자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로 입소하면 퇴소할 때 500만원의 자립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시설이 잘 알려지지 않아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지적에는 “피해자의 특수성을 고려하고 이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비공개 시설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한 허민숙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비공개시설은 입소자의 안전과 보안에 더욱 유의하라는 의미이지 피해자들이 제도적 미비로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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