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엄마가 된 이래로 보기 힘들어진 뉴스가 있는데 바로 어린아이들의 사망사건·사고 관련한 뉴스다. 특히 영아들의 사망 소식은 제목만 봐도 울컥한다. 그것이 부모에 의한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그 작고 가녀린 아기들이 얼마나 크게 부모에게 의존하는지. 그런데 그 세상의 전부 같은 부모에게 버려지고 죽임을 당하는 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글만 쓰는데도 울컥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런 안타까운 사건을 줄이고자 제정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19일부터 시행됐다. 자신이 낳은 아기들을 살해해 수년간 냉동 보관해 온 여성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여만이다.
● ‘냉동고 아기’ 사건 1년여만에…출생통보·보호출산제 시행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병원 출생기록은 있지만 정식으로 출생신고되지 않은 일명 ‘그림자 아이’, ‘유령 아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끔찍한 사건이 알려진 뒤 보건복지부가 출생아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이런 음지의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게 드러났다. 2015~2022년 사이에만 출생 미신고된 아이가 2123명이었고, 그중 약 300명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당초 복지부 발표 때는 249명이었는데 경찰 수사로 50여 명 추가됨).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서 이런 아이들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출생통보제는 쉽게 말해 병원에서 출산한 아이 정보가 지자체로 자동 통보되도록 한 제도다. 이제 분만 기관이 아동 출생 사실, 생모 성명, 출생 연월일시 등을 전자 의무기록 시스템에 저장하면 이 정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거쳐 지자체로 전달된다. 지자체는 이 정보를 토대로 출산 한 달이 넘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에게 독촉 통지를 보낸다. 그래도 답이 없으면 지자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진행한다. 과거에는 이 신고를 부모에게만 의존했기 때문에 실수 혹은 고의로 출생신고가 누락되는 아이가 발생했다.
출생통보제와 함께 시행된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산부들을 위한 제도다. 아이를 키울 수 없거나 키우고 싶지 않아 출생신고를 꺼리는 임산부가 있다면 보호출산을 신청하고 가명과 관리번호(주민등록번호 대체)를 받아 아이를 낳으면 된다. 출산한 아이는 입양기관으로 보내진다.
기껏 출생통보제를 만들어놓고 보호출산제로 ‘아이를 합법 유기’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태어날 아이 입장에서 뭐가 더 안전한지 따져 보면 답은 명확하다. 비밀로 아이를 낳을 기회를 터놓지 않으면, 자동 통보를 꺼리는 부모들은 분만 기관을 통하지 않고 사적으로 아이를 출산하려 할 것이다. 아이가 어떤 위험에 처할진 불 보듯 뻔하다. 일단 아이 생명은 살리고 보자는 게 보호출산제의 취지라 하겠다.
● 부모의 위기=아동의 위기…부모에 ‘아이 키울 수 있다’ 청사진 보여줘야
이번 제도 시행으로 출생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강화됐고 우리 출생등록제도는 진일보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다. 등록제도만 진보하고 위기 아동과 부모의 상황은 그대로라면, 부모들은 너도나도 보호출산제를 이용해 아이를 합법적으로 유기하려고만 할 것이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등록될 뿐 아니라 원가정에서 잘 자랄 수 있게 하려면 궁극적으로 부모의 위기가 해결돼야 한다. 아동의 위기는 결국 부모의 위기다. 위기에 처한 부모에게 “힘내세요~” 응원만 보낼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정보와 혜택을 제시해야 한다. 위기 부모에 대한 보육, 의료, 취업 지원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당신의 위기를 이렇게 극복할 수 있다’고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위기 부모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임신 단계부터 이런 부모들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상담창구가 생긴다지만 안타깝게도 위기 부모들은 대부분 정보취약계층이라 상담의 존재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상담창구는 물론 지원책에 대한 효과적인 홍보, 탐색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 ‘외국인 아동, 미혼부’ 출생등록 여전한 사각지대
이번을 계기로 우리 출생등록제도에서 더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출생통보제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가 남았는데 바로 외국인 아동이다. 한국에선 외국인이 아이를 낳아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현행법에 따라 오직 ‘국민’만 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자국 대사관 등에 가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당연히 미등록 출생아가 발견돼도 출생통보제에 따라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애초 외국인 신고제도가 없으니 말이다.
초저출산으로 외국 인력 도입을 확대하고 이민청까지 만드는 마당에 외국인들의 출생신고를 언제까지고 막아둘 순 없다. 국내 외국 인구가 늘면 분명 국내 아동과 마찬가지로 사각지대도 생길 것이다. 실제 최근 불법체류 외국인이 유기한 중증장애아의 딱한 사연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아기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그 어떠한 법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21대 국회에서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법이 발의되긴 했지만 국회 임기가 끝나며 폐기되었다.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출생신고 대상을 ‘미혼부’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재 출생신고는 생모와 그 생모의 법적 배우자만 할 수 있다. 생부라 해도 생모와 법률혼 상태가 아니면 출생신고가 불가하거나 무척 어렵다.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DNA 검사를 통해 생부인 것이 확인되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제도 개선 필요하다면 ‘아동 입장에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도 시행되면 또 출생신고제 관련 여러 보완할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예를 들어 ‘7일 이상’으로 규정된 보호출산 숙려기간을 더 늘려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논의를 거쳐 수정하면 된다. 다만 언제든 결정의 중심엔 아동이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동 전반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는가, 그 아동을 더 행복하게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것이 곧 더 옳은 방향이다.
모든 아이는 그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이기에 잘 지키고 잘 자라도록 돕는 것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어른들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제도가 순항해 이제 그 어떤 아기의 미래도 짓밟히지 않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으니 볼썽사나운 꼴을 보기 전에 그만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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