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죽을 수 있는 사회로] 〈상〉 네덜란드의 ‘통합돌봄’
병원사망, 네덜란드 23%-韓 70%
“비슷한 이웃들을 만나 웃고 떠들면서 치매도 스스로 관리하며 지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올 5월 29일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남부 암스텔베인시에서 만난 앙엘라(가명·73) 씨는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다 3년 전 처음 치매를 진단받은 직후엔 정말 막막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매주 월수금 오전 10시면 데이케어센터(낮 돌봄시설) ‘오덴스하위스’를 찾는다. 앙엘라 씨 외에도 인근에 거주하는 경증 치매 환자 40여 명이 지팡이를 짚거나 전동 휠체어를 타고 시설을 찾는다.
오전 10시 반이 되면 노인들은 책상에 둘러앉아 커피와 와플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떤다. 이후 센터 직원이 인솔해 동네 산책을 다녀온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낮잠을 자거나 카드게임, 재활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간다.
이 시설은 네덜란드가 구축한 지역 통합돌봄 체계의 일부다. 네덜란드는 치매를 비롯한 만성 질환을 가진 노인들이 집에서 말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돌봄평가기관(CIZ)’을 통해 맞춤형 케어 프로그램을 짜 준다. ‘치매로 인한 인지 능력 저하가 나타나고 있으니 케어팜(치유농장)을 통해 주 3회, 회당 2시간씩 사회적 활동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이를 통해 가급적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사망 직전까지 집에서 머물 수 있게 도와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네덜란드 전체 사망자 중 병원에서 숨지는 비율은 23.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반대로 한국은 70.0%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네덜란드 보건복지체육부에서 노인복지 등을 담당하는 마르틴 홀링 프로젝트 매니저는 “정부의 목표는 노인들이 생활 능력을 유지하며 최대한 자택에서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병상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비극이고 건강보험 측면에서도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요양병원 안가고 ‘케어팜’서 채소 가꾸기… 네덜란드 ‘맞춤형 돌봄’
2015년 노인 통합돌봄 체계 완성 치매-홀몸 등 ‘맞춤형 케어’ 제공 노인들이 집에서 마지막 맞도록 ‘의료-사회적 돌봄’ 맞물려 지원
올 5월 30일 네덜란드 남부 켈펀올러르시.
‘케어팜’ 조르흐후버더포르트의 마우트 콜런 부원장은 “70대 치매 어르신도 양상추를 기를 수 있다. 저길 보라”고 했다.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비료를 짊어진 70대 남성이 보였다. 이 남성은 텃밭으로 가더니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콜런 부원장은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우며 몸을 움직이면 신체적,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전역에는 이 같은 케어팜 1400여 곳이 운영되고 있다. 케어팜들은 지역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퇴화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와 교류하게 돕는 역할도 한다.
● 노인마다 맞춤형 케어 플랜 제공
네덜란드는 고령화가 가장 빨리 시작된 국가 중 하나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970년 10.1%로 반세기 전 이미 고령화사회가 됐다. 2022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의 65세 이상 인구는 353만 명으로 전체(1770만 명)의 20%가량을 차지한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덩달아 의료비 지출도 늘었다. 네덜란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1970년 5.9%에서 2019년 13.1%로 급증했다. 네덜란드는 1970년대부터 자택에서 노후를 보내길 원하는 노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의료보험 재정 부담도 줄이기 위해 의료와 간호 및 요양이 연계된 통합돌봄체계를 구축해 왔고, 2015년 개혁을 단행해 통합 체계를 완성했다.
통합돌봄체계의 핵심은 맞춤형 케어 플랜을 짜주는 CIZ다. 보건복지체육부 산하 독립 기관인 CIZ는 건강 상태에 따른 객관적 지표에 따라 노인들에게 맞춤형 케어 플랜을 결정해준다. 주치의 제도를 통한 노인 만성질환 관리, 장기 요양법을 통한 주간 돌봄 및 방문 간호, 지방자치단체의 가사 및 이동 지원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최적의 지원 방안을 도출해주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2018년 한 발 더 나아가 ‘집에서 더 오래’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지역 간호사 등을 활용해 노인들이 집에서 건강 관리를 하며 가능한 한 오래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국민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요양병원,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하는 요양원,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노인돌봄서비스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다른 기준으로 제각각 운영되고 있다. 한국 역시 2019년 통합돌봄 시범 사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기관별로 이해관계가 너무 달라 통합까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 중증 치매 환자, 집과 비슷한 환경에 거주
네덜란드의 경우 자택에서 케어팜 등을 다니며 지역 간호사의 간호를 받다 임종을 맞는 경우가 많다. 중증 치매 상태 등으로 혼자 생활할 수 없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최대한 자택과 비슷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조르흐후버더포르트에서 운영하는 노인 공동생활 시설에는 노인 27명이 거주하는데 각자 방을 하나씩 사용한다. 또 방에는 자택에서 쓰던 낯익은 가구와 물건을 배치했다. 간호사 7명과 요양보호사 28명이 배치돼 있는데 노인들이 스스로 요리하고, 빨래하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대한 집에서처럼 보낼 수 있게 도와준다.
건강에 큰 문제는 없으나 배우자 사별 등으로 혼자가 된 노인 중 이웃과 함께 거주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고령자 사회주택도 네덜란드 전역에 마련돼 있다. 네덜란드 보건복지체육부 당국자는 “네덜란드에서도 1990년대까지는 요양원 등 시설 입소 비율이 높았다”면서 “현재는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하고 싶어 하는 노인의 욕구를 존중하는 정책이 정부의 전반적인 정책 기조가 됐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들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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